1955년 3월 19일 미국 인디애나주 버틀러대학 필드하우스 농구 경기장. 인디애나주 고교 농구 대회에서 크리스퍼스 애틱스 고교가 우승을 차지했다. ‘흑인 학교 최초’였다. 1941년 흑인 학교에 대회 참가를 허용한 지 14년만의 일이었다. 공식 참가 자격을 줬다 한들, 비공식적 편파 판정 등은 여전했다. 그 모든 걸 이겨낸 우승이었다.
필립 휴즈의 논픽션 ‘소년은 멈추지 않는다’는 이 애틱스 농구팀 이야기를 다뤘다. 박진감 넘치는 농구 게임 묘사,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풍부한 설명, 여기에 학생 개개인의 삶의 궤적을 세밀하게 훑는다. 그 덕에 길이 28m, 폭 15m의 농구 코트는 금세 인종차별의 축소판이자 격전지가 된다.
이야기 자체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약체 팀이 기어이 정상에 오른다는 흔한 스포츠 서사를 따라간다. 하지만 애틱스 팀 이야기엔 좀 더 복잡한 시대적 맥락이 들어간다. 1916~1970년까지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약 600만명. 인디애나폴리스는 그런 흑인이 모여든 도시였으나,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인디애나폴리스는 북부 도시 중에서도 백인우월주의집단 KKK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 1927년 흑인 고교 크리스퍼스 애틱스 설립은 그 때문이었다.
차별은 의외의 효과를 낳았다. 분리정책 덕에 뛰어난 흑인 학생들은 애틱스로 갔다. 백인 학교가 안 받아주니 뛰어난 흑인 교사도 애틱스에 모였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려는 열성적인 부모까지 더해졌으니 애틱스는 그야말로 최고의 잠재력을 지닌 학교가 됐다. 그 잠재력이 애틱스 팀을 우승으로 밀어올렸다. 애틱스 팀의 우승은 어쩌다 한번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소년은 멈추지 않는다
필립 휴즈 지음ㆍ김충선 옮김ㆍ류은숙 해제
돌베개 발행ㆍ336쪽ㆍ1만4,000원
그러고 보니 1955년 흑인 농구팀 우승 기적을 만든 건 고등학생들이었듯, 그 이전 1951년에는 백인 학교에 비해 열악한 흑인 교육 환경을 고발하기 위해 자체 휴교 운동을 벌인 이는 16살 흑인 소녀 바버라 존스였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차장의 지시를 거부하며 버스 내 흑백 분리법에 항의한 사람 또한 15살 클로뎃 콜빈이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은 흑인 민권운동사를 되돌아보며 “공포의 장막이 걷힌 것은 이 나라의 흑인 청소년들 덕분이다”고 말했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건 젊은이들이라는 것, 이 책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