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ㆍ경북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섭게 확산하면서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이들 지역 주민들에 대한 진료와 수술을 ‘되도록’ 연기하거나 피했다. 혹시 모를 병원 내 감염 우려 때문이라지만, 거주지역만 놓고 진료 회피를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여론이 거셌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구에도 병원이 있는데 왜 서울로 올라와 치료를 받느냐”는 매몰찬 목소리들도 불거져 나왔다. 치료받을 곳을 찾아 힘들게 상경한 대구ㆍ경북 환자들의 상처를 깊이 후비는 말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병원을 비롯한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을 떨쳐버리고 12일 경북 예천군에서 올라온 위암 환자에 대한 수술을 집도했다. “신종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으면 출신 지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며 메스를 잡은 이는 최성일 강동경희대병원 외과 교수다.
최 교수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9일 경북 예천에서 위암수술을 받기 위해 상경해 입원한 위암 환자 김모(61)씨 수술을 오후에 집도한다”라며 “신종 코로나 위험지역에 거주하는 환자이지만, 수술을 연기할 경우 암세포가 전이될 수 있어 수술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김씨는 공교롭게 대구ㆍ경북에서 신종 코로나 확산의 출발점으로 지목 받아온 31번째 확진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2월 중순 대구의 모 건강검진센터에서 위암을 확인했다. 그는 대구 소재 대학병원에서 수술 및 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당시 대구에선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해 여의치 않았다. 수술을 해주겠다는 병원이 없었고,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가 자칫 신종 코로나에 노출돼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가까스로 김씨는 사위의 수소문 끝에 서울 강동경희대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상경했다. 하지만 병원은 서울로 올라온 그에게 “예정된 수술을 할 수 없다”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김씨가 병원을 찾은 지난달 23일은 정부가 감염병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한 날이었다.
병원측의 결정에 따라 김씨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최 교수의 고민이 시작됐다. 김씨의 경우 진행성 위암이라 치료시기를 놓치면 암세포가 곳곳에 전이될 수 있어 수술을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최 교수는 3월 초 수술을 결심하고, 병원 측과 논의에 들어갔다.
다행히 최 교수는 병원을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신종 코로나 검사(PCR)에서 음성판정을 받는 조건 아래 김씨의 수술을 하기로 했다. 김씨는 음성판정을 받아 수술대에 오르게 됐지만, 병원측은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김씨의 수술 스케줄을 당일 마지막 순서로 배치하고, 수술 후에는 수술장을 임시 폐쇄해 환경소독을 실시한 후 문을 열기로 했다. 최 교수를 비롯해 김씨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은 모두 일반 수술복이 아닌 레벨(Level)D 보호복과 N95마스크, 고글 등을 착용한 후 수술에 임했다. 김씨가 수술장까지 내려가는 동선도 별도로 마련했을 정도다. 최 교수는 “대구ㆍ경북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지만 의사로서 환자를 살리겠다고 약속을 한 만큼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가족들도 최 교수와 병원 측의 결정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위 윤모 씨는 “대구‧경북 사람이란 이유로 수술할 수 없다는 병원들이 많아 속이 타들어 갔는데 수술을 결정해준 병원에 감사 드린다”라며 “국가적 재난사태가 발생했지만 생명이 위독하거나, 수술이 꼭 필요한 환자는 지역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래 병원장은 “수술이 필요한 대구‧경북 환자들이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병원 시스템을 구축했다”라며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 이들 지역 환자들이 어려움 없이 치료 받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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