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교수 한국이란 무엇인가] <9>감염병과 국가
※‘칼럼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한국의 정체성, 역사, 정치, 사상, 문화 등 한국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찾아 나섭니다.‘한국일보’에 3주 간격으로 월요일에 글을 씁니다.
유랑하는 도적이 불규칙적으로 찾아와서 돈을 뜯는 게 좋을까, 아니면 아예 정주하는 도적이 착취하는 게 좋을까? 미국의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Mancur Olson)에 따르면, 후자가 주민 입장에서 낫다. 정주하면서 해당 지역을 독점하는 도적은 유랑도적과는 달리 주민들을 시도 때도 없이 가혹하게 착취하지 않는다. 대신 안전을 보장해주고 자릿세를 뜯을 뿐이다.
그들이 착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 더 오랫동안 자릿세를 뜯어갈 수 있으니까 그럴 뿐이다. 주민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면, 오래 살려두어 황금알을 얻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래서 올슨은 정주형 도적이 “사슴을 잡아먹는 여우가 아니라 가축을 보호하고 물을 제공하는 목장 주인”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올슨이 보기에, 이런 정주형 도적은 국가와 유사하다. 국가가 제공하는 치안은 깡패집단이 제공하는 안전에 해당하고, 국가가 걷는 세금은 도적이 걷는 자릿세에 해당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외적의 침략을 받는 것보다는 세금을 내고 안전을 맡기는 게 이익이다.
물론 국가는 자기를 도적이라고 부르는 대신 미사여구로 자신을 치장한다. 그렇다고 정주형 도적보다 국가가 더 좋은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그저 합리적인 이윤 추구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회 전체로 보면 그들의 이윤 추구가 더 공공의 이득을 가져온다. 물론 현실의 정주형 도적이나 국가가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가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에 따르면, 감염병 역시 비슷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균이나 바이러스같은 유랑 기생체는 대상을 착취하기 위해 숙주를 찾아 다닌다. 유랑하는 악성 기생체에게 초토화되지 않으려고 우리는 몸 안에 균이나 바이러스를 일부러 넣어 항체를 만든다. 조선 말의 학자 지석영(池錫永)이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처남에게 소의 고름을 주사하려 들자 장인 장모가 펄쩍 뛰었다. 왜 그 나쁜 걸 집어넣어, 우리 아들한테!
어차피 기생체들이지만, 항체를 만들기 위해 몸에 정주한 균이나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을 지경까지 착취하지는 않는다. 균이나 바이러스 입장에서도 숙주인 동물들을 죽여 버리면 자기 손해이다. 착취 대상이 사라져버리는 거니까.
인생은 어차피 전쟁일지 모르지만, 감염병이 돌면 인생은 이중 삼중으로 전쟁이 된다. 전쟁이 격화될수록 국가의 힘도 커진다. 외적의 침탈을 막아야 할 뿐 아니라, 악성 병원체하고도 싸워가며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빨리 백신을 만들어서 국민의 몸에 주사하려 들고, 국민은 국민대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관제탑을 마음 속에 세운다. 국가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라고 요구하고, 국민은 국민대로 정신력을 박박 긁어내어 평소보다 더 질서를 지킨다.
어디 그뿐이랴. 국가는 평소보다 쉽게 폐쇄회로(CC)TV와 핸드폰 기록을 통해 국민의 사생활 정보를 수중에 넣는다. 긴급재난 문자를 보내어 확진자의 동선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고(故) 문중원 시민분향소 옆 천막, 탈북 단체 천막 등, 각종 농성자의 천막을 강제 철거한다. 한국 시민 활동의 주 무대였던 광장은 전에 없이 고요해진다.
종교활동을 자제하고 국가의 명령에 협조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다. 신흥 종교 연루자들의 연말정산 기록을 다시 살펴본다. 이른바 재림예수가 나와서 사죄 기자회견을 한다.
이 모든 것이 기후 변화와 더불어 갑작스레 생긴 일만은 아니다. 감염병은 늘 한국인을 괴롭혔고, 감염병에 대처하고자 한국의 전근대 국가도 방역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감염병이 돌면, 예방과 치료를 위한 수칙을 반포하기도 했다.
감염병을 막기 위해 세종대왕이 내린 명령 중에는 세수하고 참기름을 코 안에 바르라는 내용과 종이 심지를 말아서 콧구멍에 넣어 일부러 재채기를 하라는 내용도 있다.
사회적 격리에도 애를 썼다. 이른바 구질막(救疾幕) 혹은 병막(病幕)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1732년에 서울에 역병이 돌자, 서울지역에 1,000여 곳 넘는 격리소가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다.
감염병을 막기 위해 각종 의학지식도 총동원되었다. 조선 시대의 저명한 의학자 허준(許浚)이 감염병의 원인과 치료법 등을 정리하여 1613년에 간행한 ‘신찬벽온방’(新撰辟瘟方)에 따르면, 호랑이 머리뼈를 베개 근처에 두고 자면 감염병을 물리치기 좋다. 그러나 오늘날 어디 가서 호랑이 대가리를 구한단 말인가.
조선 후기 최대의 학자 정약용(丁若鏞)이 지은 ‘마과회통’(麻科會通)은 천연두 예방을 위해 종두를 시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약용이 비판적으로 검토한 종래의 처방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부류의 아이들은 종두를 시행해봤자 성공할 수 없다. “마른 아이”, “비위가 약한 아이”, “맥박이 화평하지 못한 아이.” 그리고 “정신이 권태로운 아이” 역시 감염병에 취약하다. 정신이 권태로운 이는 조심할지어다.
정약용이 1798년에 편찬한 ‘의령’(醫零)의 내용은 이렇다. “천연두가 잘 낫지 않는 것은 그 독이 피륙을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니, 땅을 잘 뚫는 두더지를 다려서 즙을 먹으면 좋다.” 요즘도 시장에 가면 두더지를 파는지 궁금하다. 1884년 한국에 입국한 미국인 의사였던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은 조선인들은 병에 걸리면 강장제로 개머리를 끓인 국을 먹는 데 질색했는데, 이 습속은 지금 어찌 되었을까.
이런 의학적 방책들이 효험이 있었을까. 숙종의 어의(御醫)였으니 당대 최고의 의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시필(李時弼)이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을 편집해서 선보였다는 ‘소문사설’(謏聞事說)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개의 간을 흙과 섞어 반죽으로 만들어 부뚜막에 바르면, 아내와 첩이 효도하고 순종하게 된다.” 지인 한 명이 이 방법은 효험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설마 진짜 해봤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위에 거론한 방법들도 효험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아닌 게 아니라, 소위 조선의 르네상스였다는 정조 때, 1786년 4월부터 6월까지 감염병이 돌았는데, 그때 죽어 거리에 나온 해골 숫자가 약 37만명이라고 한다. 학자마다 견해 차이는 있어도 1858년도의 콜레라 유행에는 대략 1,000만 인구 중 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추산이 있다. 물론 항생제가 발명되기 전 서양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감염병이 격화될수록 국가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국가의 활동력이 증대하면 사람들은 국가에 순종한다. 전쟁을 치른 달지, 감염병을 막는 달지 하는 대의명분이 있으면 사람들이 국가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는 법이다.
루이 14세에게 인구 총조사를 제안하면서 마르키스 드 보방(Marquis de Vauban)이 말한 것처럼, 나라의 과거와 현재 상태에 대한 정보를 장악할 수 있으면 국가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그러나 사람들은 꾸준히 순종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 와중에 국가의 활동을 전유하기 시작한다. 혹자는 마스크를 횡령하고, 혹자는 마스크를 매점매석 하여 일확천금을 노린다. 때가 때이니만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하다 말고, 사람들은 갑자기 한마디 덧붙인다. “그래도 소규모로 모여 독한 술 마시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야음을 틈타 모여 술을 마시려다가 결국 반성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혼자서라도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현대의 한국에서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고려 시대 이름난 술꾼이자 문인이었던 이규보(李奎報)는 방역을 술 마실 기회로 이용했다. 당시에는 감염병 막는 약을 술과 함께 먹도록 처방되었는데, 이규보는 노래한다. “술잔 기울일 일 아니었으면 아마 약도 먹지 않았으리.” (不爲傾盃殆必休) “벽온단 먹는다고 온역(溫疫)을 피한다는 것도 헛소리지만, 술 마시려고 사양하지 않았네.” (辟瘟丹粒猶虛言, 爲倒醇醅故不辭) 약을 먹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기 위해 약을 먹는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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