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집에만 있을 수 없잖아요” 코로나 잊은 청년들 안전불감증
클럽 임시 휴업한 14일, 강남 일대 감성주점ㆍ헌팅포차 성행
폐쇄된 지하ㆍ밀접 접촉ㆍ내부 흡연… 감염 위험성 높아
“여자친구도 없는데 즐기러 왔어요. 오늘 화이트데이잖아요.”
14일 오전 1시 송파구 잠실동의 한 감성주점. 입장 시 체온 측정을 제외하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주의 사항은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홀로 들어서자 화려한 레이저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에서 100명 가까운 20~30대 청년들이 한데 엉켜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서빙하는 직원을 제외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손님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땀을 흘리며 춤을 추던 박모(25)씨는 “요즘 클럽들이 전부 문을 닫아 경기 수원에서 올라왔다”며 “좀 불안하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랑 이야기는 안하고 춤만 신나게 추다 갈 계획”이라며 다시 무대로 향했다.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로 강남과 홍대ㆍ이태원 일대 클럽이 대부분 임시 휴업에 들어가자, 단속이나 감시가 보다 느슨한 공간으로 청년들의 발걸음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일반음식점이지만 예외 조례를 인정받아 춤을 출 수 있는 ‘감성주점’이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헌팅포차’가 클럽을 대체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청춘들의 발길이 몰리면 몰릴수록 집단감염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4, 15일 이틀간 둘러본 강남 일대의 감성주점과 헌팅포차는 말 그대로 문전성시였다. 최소 30분을 대기해야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클럽이 임시 휴업에 들어가면서 주변 노래방 등이 연쇄적으로 ‘개점휴업’ 상태에 빠진 홍대입구나 이태원 일대와 극명하게 비교될 정도였다.
15일 자정 강남 일대의 헌팅포차 3곳은 모두 만석이었다. 20명 이상의 입장 대기 끝에 포차 내부로 들어서자, 술에 취한 손님들이 자리를 옮기며 서로 몸을 부대끼거나 잔이 뒤섞이는 등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청춘의 발걸음이 몰리는 주점에 코로나 방역이 있을 리 없었다. 강남역 일대의 A포차에는 손 세정제를 비치하지 않은 것은 물론, 직원들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대학생 김모(22)씨는 “코로나 사태가 걱정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엔 답답하다”며 “클럽이야 위험할 수 있겠지만 포차는 일반 식당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감성주점은 집단 감염에 더 취약해 보였다. 환기가 되지 않은 지하에 위치한 데다 춤을 출 때면 좁은 무대에서 몸을 부대낄 정도로 혼잡하기 때문이다. 흡연도 자유로워 복도나 화장실, 심지어 무대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다 침을 뱉는 등 비말 감염의 위험성도 높다. 사정이 이런데도 강남구 B감성주점의 한 직원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영업을 멈출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구청의 휴업 권고도 무시한 채 영업을 강행한 클럽도 없지 않았다.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 10개 클럽이 일제히 문을 닫은 14일 서초구의 C클럽은 유일하게 문을 열어 장사진을 이뤘다. 클럽 측은 신종 코로나 사태를 의식한 듯 입구에 경비원 6명을 배치, 마스크 미착용 시 입장을 제한하고 체온을 측정했다. 하지만 클럽에 내부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집단 감염 위험성이 높은 주점 등의 다중이용시설 이용을 당분간 자제하라고 조언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비말 감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 때 가장 위험한데, 클럽의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감염에 매우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클럽과 PC방 등의 출입은 감염병 확산 때만이라도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글ㆍ사진=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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