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이곳에서 발견한 고양이 사체만 열 손가락을 채워요. 대부분 새끼 고양이였죠. 영하권으로 떨어진 날이 그리 많지도 않았는데, 모두 얼어 죽었더라고요.”
15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만난 캣맘 문에스펜(활동명 ᆞ55)씨의 증언이다.
지난 겨울이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따뜻했다지만 이문동 재개발정비사업지구에 남겨진 고양이들에겐 그 어느 때보다 혹독했다. 철거를 앞두고 940여가구가 모두 이주한 동네엔 악취 풍기는 쓰레기와 건물 뼈대만 폐허처럼 남았다. 사람은 떠났어도 ‘영역동물’인 고양이들은 여전히 이곳을 지킬 수밖에 없다. 인근 재개발 구역까지 합치면 700~800마리에 달한다.
인근 구역에도 한때 1,000여 가구가 모여 살았지만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짐을 싸야 했다. 이들 중 일부는 함께 살던 고양이를 그대로 두고 떠났다. “최근엔 품종묘가 7마리나 발견됐어요. 모두 버려진 아이들이죠. 사람 손을 타던 고양이들은 주인 떠난 집에 남아 3일씩이나 울어요.” 이날 현장에서 만난 동대문구 길고양이 보호협회 소속 김명순 활동가가 한숨을 지었다.
◇썩어가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찢기고 다치고 병든다
남겨진 고양이들의 건강 상태는 최악이다. 이주가 시작된 지난해 여름부터 버려진 쓰레기가 부패하면서 고양이들 사이에서 병이 돌았다. 많은 고양이가 구내염을 앓기 시작했다. 고통 때문에 밥조차 제대로 씹어 넘기지 못하다 보니 적지 않은 수가 굶어 죽었다. 도처에 널린 유리 조각에 발이 찢기는 등 부상을 입는 경우도 흔했다. 살릴 방법은 구조해 치료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는 포획틀 ‘통덫’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
이대로라면 당장 4월부터 시작되는 철거 작업에 고양이들이 모두 깔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재개발 조합도, 지방자치단체도 ‘나 몰라라’다. 결국 동물 보호 활동가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6년차 캣맘 김꼭빵(활동명ᆞ35)씨와 10년차 문에스펜씨는 의기투합해 이달 초 ‘이문냥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상처를 입거나 병이 든 고양이부터 구조해 치료하고, 중성화 수술을 거쳐 입양을 보내거나 방사하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러나 수술비와 치료비는 물론 일손도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중성화 수술까지 캣맘 주머니 털어서… 지자체도 조합도 ‘나몰라라’
급한 대로 개체 수라도 억제하기 위해 TNR(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한 뒤 제자리에 돌려 놓는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고양이들을 인근 지역에 방사하거나 입양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중성화 수술은 필수다. 그런데 수술 비용이 문제다. 아무리 저렴하게 잡아도 마리당 40만원이 넘게 들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지원도 원활치 않아 결국 지역 캣맘들이 사비를 털어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철거 개시까지 고작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 문씨와 김씨는 마음이 급하다.
“동대문구 측에서 지원하는 TNR 시술 가능 개체수는 1년에 390마리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1년에 800~900마리까지 지원하는 다른 자치구에 비하면 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죠. 하도 급해서 연락해 봤더니, 아직도‘포획업자를 선정하는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힘이 빠집니다. 당장 철거가 4월에 시작되는데 아직까지 검토 중이라니…” 문씨와 김씨는 잘 시간도, 화장실 들를 시간도 없이 동분서주 중이다. 오직 ‘한 마리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그런데도 상황이 너무 좋지 않으니, 언제나 죄책감이 시달려요. 어쩌면 건물이 무너질 때, 우리도 이 고양이들이랑 함께 무너져 내리겠구나, 하는 패배감이 자꾸만 짓누르죠.”
◇매년 수천, 수만 마리 죽어나가는데…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의 목숨은 누구의 책임일까? 재개발 조합은 지역 내 고양이를 보호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 지자체 조례에 ‘도시정비촉진지구 내 길고양이 보호와 구조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지자체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도저히 고양이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민간 활동가들이 생계까지 포기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김꼭방씨는 “서울 지역에만 590여 곳, 전국 수천여 곳에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고양이 이주 문제에 대한 기본적 매뉴얼조차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부산시 동래구 도시정비촉진지구 ‘온천 4구역’에서 길고양이를 구조해온 최정우 ‘온천냥이 프로젝트’ 회장은 “대부분의 재개발 지역 내 고양이 보호 프로젝트가 소수의 지역 활동가들에게 의존하는 형태로 굴러가다 보니 뚜렷한 성과 없이 지지부진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한 달 평균 500만원씩 8개월간 7,000만원 이상 치료비와 수술비로 썼지만 대부분 후원금에서 충당했다”며 “지자체나 조합, 심지어 동물단체로부터도 이렇다 할 도움을 받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수의사나 포획업자와 같은 이익단체들이 담합해 장사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재개발 지역 내 고양이 보호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는 ‘온천냥이’는 총 282마리의 고양이를 구조해 120마리를 근거리에 방사했고, 120마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홍보를 통해 입양을 보냈다. 현재 이들은 다른 재개발 지역 내 고양이 보호 및 이주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시행착오를 기록하고 매뉴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람 속에 고통받은 고양이들을 위한 ‘호스피스 쉼터’ 만들어주세요
이주와 방사를 거치고 남은 고양이는 평생 돌봄이 필요할 정도로 부상이 심하거나, 나이가 들어 거동조차 불편한 개체들이다. 이가 다 뽑혀서 사료를 씹을 수 없는 고양이, 담뱃불로 눈이 지져지는 학대를 당해 평생 눈을 깜빡일 수 없는 고양이, 병에 걸려 한쪽 눈을 통째로 적출한 고양이, 뒷다리가 통째로 잘린 새끼고양이까지 다양하다. 다시 길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입양조차 쉽게 되지 않는 이 고양이들은 영영 갈 곳을 잃는 것일까.
“병에 걸린 사람도 더 이상 의료진이 손 쓸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호스피스’ 병동에 가잖아요. 남은 생을 존엄하게 유지하며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사람의 욕망 때문에 내몰리고 다치고 고통에 처한 고양이들에게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 회장은 방사, 입양 그 어느 쪽도 택할 수 없는 고양이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를 만들 생각이다.
이문냥이 활동가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개발 현장은 인간이 만든 거대한 ‘학대의 장’이며, 고양이들의 터전을 빼앗고 상처를 입힌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알릴 계획이다. “단지 이문동 고양이들을 구한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재개발 지역에 남겨진 ‘00동 고양이’들이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날까지, 끊임없이 나설 겁니다.”
※이문동 재개발지역 길고양이 보호프로젝트를 돕고자 하는 독자께서는 트위터에 '이문냥이'를 검색해주세요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이동진, 문소연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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