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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임대인 운동...개인 ‘선행’ 넘어 선한 ‘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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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임대인 운동...개인 ‘선행’ 넘어 선한 ‘제도’로

입력
2020.03.19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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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덜 받기 확산하는 가운데

소상공인연합회, 상설협의체 추진 임대인 위주 결정 과정 변화 기대

“영국ㆍ독일 등은 사회적 합의로 결정… 임차ㆍ임대인 상생, 정부가 나설 때”

1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 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내건 착한 임대료 감사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1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 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내건 착한 임대료 감사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원장님 안녕하세요. 경기도 안 좋은데 코로나19까지 창궐해 힘드시지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임대료를 3개월 간 20% 인하합니다. 우리 함께 코로나를 물리칩시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색소폰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 원장은 얼마 전 임대인으로부터 받은 문자에 한 시름을 덜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강생이 크게 줄었지만 90만원의 월 임대료와 각종 세금 및 관리비 등의 부담으로 밤잠을 설쳤던 순간에 날아온 희소식 때문이다. 이달에만 150만원 이상 적자를 각오했다는 그는 “임대료 인하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며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건물주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힘들 때 도움을 받았으니 나중에 임대인이 혹시 어려워지면 발 벗고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일정기간 덜 받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나아가 착한 임대인 운동을 제도화 시키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되면서 개인의 ‘선행’이 국가적 재난을 대비한 선한 ‘제도’로 정착되는 모양새다.

18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한 전통시장·상점가 임대인은 2,179명, 혜택을 받은 점포는 2만4,030개다. 지난 달 20일 137명(1,790개)에 비해 15배 이상 늘었다. 가맹수수료를 인하해 점주를 돕는 프랜차이즈 본부도 지난 달 27일 9곳에서 지난 13일엔 68곳으로 급증했다. 착한 임대인 운동이 소상공인 업계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양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착한 임대인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려는 시도도 감지되고 있다. 권순종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은 “착한 임대인 운동을 연중 사회문화 운동으로 격상하고 지역 소상공인연합회(임차인)-지역 건물주협의회(임대인)-지방자치단체 간 상설협의체를 구성해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고 밝혔다.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상설협의체에서 적절한 임대료 인하 기준 등을 만들고 반대로 상황이 나아지면 임차인들이 임대료를 높여 납부하는 형태로 상생하자는 구상에서다.

소상공인연합회에선 전국의 임대료 현황이 포함된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기준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권 부회장은 “착한 임대인 운동의 제도화는 같은 지역에서 한 쪽 임대인만 임대료를 낮추는 바람에 벌어지는 임대인과 임대인 간 미묘한 갈등이나 막무가내로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는 임차인 때문에 발생하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착한 임대인 운동 확산 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착한 임대인 운동 확산 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특히 착한 임대인 운동의 확산과 정착은 임대인 위주의 건물 임대료 결정 과정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긍정적인 기대감도 낳고 있다. 현재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만큼, 임대료 협상 테이블에서 임대인의 권한은 절대적인 게 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민간에서 시작된 착한 임대인 운동은 갈수록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개별 기업 등으로 퍼지면서 사회적인 공감대도 이끌어내고 있는 추세다.

청년 주거활동가인 권지웅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임대료를 협의해서 결정하면 지속 가능한 관계가 더 오래간다는 걸 우리는 비로소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며 “선진국들은 이미 표준임대제(독일)나 공정임대제(영국) 등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임대료를 결정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는데 우리도 착한 임대인 운동의 제도화를 논의해볼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도 “임대료를 깎아주면 임차인만 좋은 게 아니다. 임차인이 건물에서 쫓겨나 공실이 생기는 것보다 장사를 이어가 꾸준히 수익이 나는 게 임대인도 이득”이라며 “착한 임대인 운동 홍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좀 더 적극적인 유인책도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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