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아나운서에서 2004년 한나라당 의원으로 변신 내리 4선
‘친정’ 통합당과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 갈등 끝 사퇴 선언
“제 생각은 ‘어린왕자’의 꿈이었던 것 같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 명단을 놓고 미래통합당과 갈등을 빚어 온 미래한국당 한선교 대표가 19일 사퇴하면서 남긴 변(辯)이다. 올해 1월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자신의 국회의원 생활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지 고민 중이라던 한 의원은 이로써 16년의 정치 인생을 매듭짓는 수순에 들어갔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유명 아나운서로 대중에게 익숙했던 한 의원은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후보로 17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1984년 MBC 공채로 입사, 방송 경력 20년을 맞는 2004년에 방송계를 떠난 그는 “남들은 깨끗하지 못한 자리에 왜 뛰어드느냐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저 같은 사람이 나서야 그런 정치판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 의원은 같은 해 경기 용인을에 출마, 당선됐다.
이처럼 ‘정치판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한 의원은 정계 입문 첫해부터 친박(친박근혜)계의 길을 걸었다. 제17대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당의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를 지지하면서다. 이 때문에 제18대 총선에서는 친이(친이명박)계에 의한 친박계 공천 숙청으로 탈당, 무소속으로 경기 용인 수지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당선 직후 한나라당에 복당한 한 의원은 19대, 20대 총선에서 내리 배지를 달면서 4선 중진 의원이 됐다.
다만 정치인으로 자리잡는 동안 교양 있고 친절한 이미지의 아나운서였던 한 의원은 욕설과 폭력, 성희롱 논란 등 끊임없는 잡음을 냈다. 2016년 9월엔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두고 항의하면서 국회 경호원의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공무집행방해로 벌금 500만원의 약식기소 처분을 받았다. 바로 다음달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을 향해 “왜 웃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발언했다가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의 사무총장으로 있던 지난해 5월엔 국회 본관 사무총장실에서 같은 당 당직자를 향해 “야 이 시X새X야, X같은 새X 다 꺼져라” 등의 욕설을 한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한국당 사무처 노동조합은 당시 성명서를 통해 “(한선교) 사무총장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인격 말살적ㆍ인격 파괴적 욕설과 비민주적 회의 진행으로 사무처 당직자들의 기본적인 자존심, 인격을 짓밟았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 의원은 결국 1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 의원은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제 의원 생활 중에 탄핵되시고 감옥에 가신 박근혜 대통령에게 죄송하다”며 “저를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는 “저는 원조 친박이고, 원조 친박이란 걸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이) 대변인을 2번 시켜주셨다. 저는 그분을 존경한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불출마 선언 이후 한 의원을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대표로 지명했다. 한 의원이 황 대표의 대학(성균관대) 1년 후배이자 황 대표 체제에서 첫 사무총장을 맡았던 만큼 두 사람의 밀월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이달 16일 공개된 비례대표 후보 명단과 순번을 두고 한 의원이 황 대표의 뒤통수를 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통합당이 총선을 앞두고 영입한 인재들이 당선 안정권인 20번안에 거의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한국당 선거인단은 이날 비례대표 공천 후보 명단을 찬성 13명, 반대 47명, 무효 1명으로 부결시켰다. 통합당 측의 명단 전면 수정 요구 등 반발을 반영한 결과다. 방송인으로 20년을 일했던 한 의원은 이에 전격 사퇴를 결심,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으로 가소로운 자들에 의해 저의 정치인생 16년의 마지막을 당과 국가에 봉사하며 좋은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막혀버렸다”고 말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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