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비바람과 차디찬 한파에도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 예부터 십장생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소나무는 잡귀와 부정을 막아준다는 속설 때문에 정월대보름 전후 집마다 대문 앞에 소나무 가지를 걸어놓고 한 해의 건강과 액운을 빌어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되면서 여행 자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불현듯 솔 향기가 그리워졌다. 소나무의 좋은 기운을 받고자 하는 생각에 새벽길을 나섰다. 유명한 소나무 숲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솔숲으로 잘 알려진 충남 서산시의 해미읍성이 목적지다.
별빛에 길을 물어 도착한 소나무 숲은 푸르기는커녕 시커먼 덩치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해가 올라오고 어둠에 싸였던 성안에 햇살이 번지자 소나무들의 형상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솟은 웅장한 자태를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굽고 휘어지고 비뚤어진, 약간은 왜소한 소나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조금은 실망감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소나무의 모습에서 세상 번뇌에 고뇌하는 선비의 고상한 기개가 떠올랐고, 이내 새로운 감동이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낳기 위해 잉태한 우리 어머니들이 솔밭에 앉아 솔바람 소리로 태교를 했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이 솔 향기를 가득 담아왔다. 숲으로 따사로운 빛내림이 시작되는 순간 그동안 쌓여있던 정신적 피로감이 바람에 날려가고 상쾌한 기운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다행히 코로나19의 기세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진 듯하다. 굳이 해미읍성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나무숲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소나무 숲이 아니면 어떠랴. 숲에서 내뿜는 좋은 기운을 받는다면 한동안 쌓였던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몸과 마음에 새로운 기운이 샘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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