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25일 얼굴을 드러냈다. 그의 범행이 악질적이라고 판단한 경찰 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른 것으로 성범죄자로서는 처음이다. 조씨 신병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검사 등 21명으로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도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검찰과 경찰의 대규모 수사 착수는 당연한 것이지만 뒷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소라넷’과 다크웹 사이트 등 여성ᆞ아동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착취 영상물 제작ㆍ유포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수사기관의 미온적 대응과 사법부의 무른 처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관련 법률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동ㆍ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만 해도 현행 법률에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지만 실제론 다섯 명 중 네 명 꼴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고 있다. ‘초범이다’ ‘반성한다’는 이유로 검찰은 죄질에 부합한 구형을 하지 않고, 법원도 법정형에 걸맞은 양형을 내리지 않는 게 현실이다.
‘n번방’의 전 운영자 전모(닉네임 ‘와치맨’)씨가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른 성착취물 게시 사이트를 운영했는데도 며칠 전 검찰이 징역 3년6개월 구형에 그친 것도 수사 당국의 안이한 인식을 드러낸다. 그러다 비판이 쏟아지자 2주 앞으로 다가온 선고를 중단시키고 보강 수사에 나섰다. 전씨 기소 당시 ‘박사방’ 등과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지만 수사가 미흡했음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가입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n번방’ 사건은 법과 제도 이전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법 당국의 안이한 대처가 원인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처벌 강화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디지털 성범죄를 하면 반드시 검거돼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검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근본적 대응 방안을 강구하라”고 했고, 민갑룡 경찰청장도 “모든 수단을 강구해 끝까지 디지털 범죄를 추적ㆍ검거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국민과의 약속을 꼭 지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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