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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환자 포기’ 비일비재… 극한 몰린 미국ㆍ유럽 의료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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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환자 포기’ 비일비재… 극한 몰린 미국ㆍ유럽 의료체계

입력
2020.03.31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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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진도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 스페인선 아이스링크에 시신 보관 

프랑스 동부 도시 뮐루즈의 병원에서 이달 23일 방역 장비를 갖춘 의료진 등 구조팀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뮐루즈=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동부 도시 뮐루즈의 병원에서 이달 23일 방역 장비를 갖춘 의료진 등 구조팀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뮐루즈=로이터 연합뉴스

‘하나 남은 인공호흡기를 누구에게 제공할 것인가.’

팬데믹(pandemicㆍ세계적 대유행)으로 발전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거점, 이탈리아 북부지역 의사들은 이 잔인한 질문을 날마다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롬바르디아주(州) 브레시아시의 의사 마르코 메트라는 최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매일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며 무력감을 호소했다. 이 곳에선 마스크, 인공호흡기, 인력 등 의료자원이 죄다 부족하다 보니 의사가 환자를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료체계가 붕괴 위기로 치달은 곳은 비단 이탈리아만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를 보면 29일(현지시간) 기준 미국ㆍ유럽의 코로나19 감염자 수(약 46만명)는 불과 열흘 전보다 무려 5배 폭증했다. 24시간 의료체계를 갖추고 예비 의료품을 전부 동원해도 감염병 확산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감염자가 5만명을 넘은 독일은 호텔 등을 임시병원으로 개조해 부족한 병상을 채우고 프랑스 역시 수도권과 동부 그랑테스트 지역에 군부대를 투입해 간이 병상을 설치했지만, 그 뿐이다. 나머지 의료장비 공백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

사망자가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은 스페인에선 변변한 치료는커녕 장례 장소마저 없어 아이스링크에 시신을 임시 보관해야 할 정도다. 시스템 부재는 직업윤리를 저버린 ‘인륜 파괴’로 이어지기도 한다. 23일 스페인 한 요양시설에서 코로나19 의심 사례가 나오자 직원들이 도망가 버려진 노인들이 뒤늦게 발견된 것. 심지어 일부는 침대 위에 숨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이날까지 스페인의 누적 사망자는 6,528명으로 코로나19 발병지 중국(3,304명)의 두 배에 달한다.

미국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국 코로나19 감염자의 절반이 발생한 뉴욕주도 사실상 의료기능이 멈췄다. 인구밀도가 높아 감염병 확산 속도도 빠른 뉴욕시 엘름허스트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한 의사는 NYT 인터뷰에서 “종말이 온 것 같다”고 절망했다. 이 병원에서는 25일 하루에만 13명이 세상을 등졌다. 뉴욕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뉴욕장로교병원은 인공호흡기가 부족해 기계 하나를 동시에 여러 환자가 쓰고 있다. 부족한 장비로 어떻게든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려는 궁여지책이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구급요원이 어떤 환자를 병원에 후송할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심판관’이 돼 가고 있다”며 “기존 응급의료체계가 이번 감염병 사태를 감당하기 힘든 단계에 왔다”고 지적했다.

보호장비가 줄면서 감염 위험에 노출된 의료진 역시 하나 둘 스러지고 있다. 의료진 감염은 병원 내 집단 감염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다시 해당 의료진의 빈 자리를 보충할 인력이 없어 의료체계의 구멍을 넓히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NYT에 따르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서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한 의료인력은 벌써 30명이 넘었다. 스페인은 코로나19 감염자의 무려 14%(5,400명)가 의료진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생사를 건 물자 확보 전쟁은 나라도 갈라 놓고 있다. WP는 미 일리노이 주정부가 인공호흡기를 구하기 위해 접촉한 제조업체로부터 다른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주문에 밀려 공급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의료장비 확보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돈만 있다고 능사는 아니다. 미 행정부는 얼마 전 마련한 코로나19 긴급 예산안 중 1,000억달러(약 122조원)를 의료용품 확보에 투입하기로 했으나 획기적 개선을 꾀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AP통신은 이날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공장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의료용품 원재료 수급 체계가 한계가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가용 자원을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얘기다.

선진국도 형편이 이러한데 의료시스템이 훨씬 떨어지는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은 감히 ‘대처’란 말조차 꺼내기 어렵다. 미 CNN방송은 25일 집 주인들이 높은 감염 위험을 이유로 의료인력을 임시주택에서 내쫓고 이들 거주지의 전기를 끊는 사건이 일어나는 인도 수도 뉴델리의 실태를 전했다. 돈도 물자도 사람도 부족하면 바이러스에 저항할 남은 방법은 극한의 ‘이기주의’뿐이란 결론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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