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미국 CNN 방송은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물 사건에 대한 보도를 비중있게 전했다. 사진은 CNN 인터내셔널판 메인 화면. CNN 캡처

“한 소녀는 성기 위에 노예라는 단어를 써야 했고, 다른 소녀는 벌거벗은 채 개처럼 짖도록 강요당했다”

미국 CNN 방송이 28일(현지시간) 텔레그렘 n번방 성착취물 사건을 보도하면서 가장 처음 전한 말이다. CNN은 이날 ‘한국의 어린 여성 수십 명이 암호화된 앱에서 이른바 성노예를 강요당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n번방 사건 개요를 설명하는 한편, 한국 사회에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와 익명성을 지닌 텔레그램ㆍ암호화폐의 범죄 악용 가능성 등을 함께 짚었다.

CNN은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조주빈(25)이 “암호화된 메시지 애플리케이션 텔레그램에서 온라인 방을 열었다”면서 “(이 방) 이용자들은 젊은 여성들이 강압 속에서 모욕적인 성적 행동을 하는 것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했다”고 전했다. 이어 조씨가 16명의 미성년자를 포함해 현재까지 확인된 74명의 피해자를 협박해 성착취 불법영상물을 찍게 했다고 설명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씨는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아동음란물제작) △강제추행ㆍ협박ㆍ강요ㆍ사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개인정보 제공)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등 12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CNN은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에게 수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400만명이 넘는 사람이 ‘n번방 가입자 신상 공개’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에 서명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성 학대’라는 소제목 하에 CNN은 “이번 일은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벌어진 온라인 성추문 중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전하면서 “2018년에는 여성 수만 명이 모텔ㆍ공중 화장실 등에서의 불법 촬영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2019년에는 유명 케이팝 가수들이 연루된 불법 촬영물 공유 채팅방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n번방 사건은 광범위한 성 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인 한국에서 ‘피뢰침’(lightning rodㆍ가장 관심을 끄는 일)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텔레그램ㆍ암호화폐의 높은 보안과 익명성의 이면에는 이번 사건처럼 ‘범죄 악용 가능성’이 놓여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CNN은 “텔레그램의 암호화 기술이 전 세계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의 도구라는 것이 증명됐지만, 플랫폼의 익명성이 n번방 참가자들을 익명으로 남게 해줬다”고 꼬집었다. 또 암호화폐 역시 거래를 추적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마약 구매나 다른 불법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유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CNN은 n번방 사건을 최초로 추적해 공론화한 이들이 2명의 대학생 취재단 ‘추적단 불꽃’이었다는 사실도 비중 있게 다뤘다. 신변보호를 위해 필명을 써달라고 요구한 두 사람은 CNN에 “처음 대화방을 봤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과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면서 “이 같은 심각한 범죄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n번방 사건이 최근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면서 네티즌들은 자발적으로 영어ㆍ스페인어ㆍ중국어ㆍ일본어ㆍ독일어ㆍ프랑스어ㆍ러시아어 등 외국어로 번역해 n번방 등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알리고 있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nthroomcrime’ 등의 해시태그(#)를 붙여 공론화 캠페인을 벌이거나, CNN BBC 뉴욕타임스 등 해외 유력 언론사에 n번방 사건을 제보하는 이들도 있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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