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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스토킹 범죄자로 돌변… “누가 한 명 죽어야 끝나겠구나”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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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스토킹 범죄자로 돌변… “누가 한 명 죽어야 끝나겠구나” 절망

입력
2020.03.30 09:36
수정
2020.03.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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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화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화면

“그 다음에는 정말로 누군가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안전한 나라에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제자이자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 회원인 공익근무요원 강모씨에게 10년 가까이 살해협박에 시달린 피해여성 A씨의 청원은 절박했다. 그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박사방 회원 중 여아살해 모의한 공익근무요원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강씨가 저지른 그간의 만행을 낱낱이 공개했다. 30일 오전 9시 기준 이 청원은 게시 이틀 만에 동의자 수가 37만명을 넘어섰다.

◇“자퇴 후 학교에 커터칼 들고 찾아와”

A씨와 강씨의 악연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A씨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강씨의 담임선생님이었다. A씨에 따르면 강씨는 평소 사람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잘 못하는 학생이었다. “겉으로는 소심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비롯한 사이버 세상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온갖 무섭고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강씨는 A씨에게 자주 상담을 요청했다. A씨는 여러 차례 상담에 응해줬지만, 강씨의 의존도가 높아져 집착에 가까워지자 점차 거리를 두게 됐다. 강씨의 태도가 돌변한 것도 이 때부터다. 학교 측은 강씨와 A씨를 같은 반에 두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해 반을 바꾸려 했지만, 강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퇴했다.

강씨는 자퇴 이후에도 끈질기게 A씨를 찾아왔다. 커터칼을 들고 교무실 밖에서 기다리는 건 기본, 교실 게시판을 칼로 난도질하기도 했다. 강씨는 A씨 집으로도 찾아갔다. A씨 사진이 담긴 액자 유리를 깬 뒤 얼굴에 스테이플러 심을 박아 집 앞에 두고 가거나 아파트 복도에 빨간 색으로 ‘죽여버리겠다(I KILL YOU)’는 문구를 새겼다.

전화와 문자로도 수위 높은 욕과 협박, 잔인한 말을 쏟아내는 등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강씨에 시달리던 A씨는 결국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고소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끝나지 않는 고통의 굴레

A씨는 결혼 후 강씨를 고소했고, 강씨는 2018년 3월 수원지법에서 징역 1년2월을 선고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협박의 내용이 매우 잔혹해 피해자에게 극심한 공포심을 유발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아스퍼거 증후군(사회ㆍ정서적 발달에 결함을 보이는 자폐성 장애 중 하나)으로 인한 정신병적 상태가 범행에 다소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가족 모두가 수년을 살해협박에 시달렸는데 정신병을 앓고 있고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처벌은 솜방망이였던 셈이다.

강씨는 수감 중에도 협박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는 피할 도리가 없겠다 생각한 A씨는 강씨 출소 이틀 전 이사를 했고, 하루 전에는 휴대폰 번호도 바꿨다. 강씨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절박함으로 이름을 바꿨고, 개명한 이름으로 학교를 옮겼다. 6개월의 심의를 거쳐 주민등록번호도 바꿨다.

하지만 강씨 또한 집요하고 끈질겼다. 강씨는 불과 5개월만에 A씨를 찾아냈다. 이번엔 A씨 딸까지 표적으로 삼았다. 그는 ‘애가 뛰어댕길 정도니까 팔다리 자르면 볼만 하겠네’ ‘오늘 네 딸 진료 보는 날이지’ ‘니 가족 죽이는 건 합법이지? 기대해’ 등 가족에 대한 협박을 보다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강씨의 협박이 단순협박에 그치길 간절히 바랐지만, 최근 경찰 조사에서 그가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 조주빈(25)씨와 실제 살해모의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A씨의 충격과 공포는 더욱 커졌다. A씨는 청원글에서 “지금은 아이가 어려 부모가 옆에 있지만, 나중에는 그 사람 얼굴도 모르는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전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라고 흐느꼈다.

◇강씨는 A씨 집주소를 어떻게 알아냈나

강씨는 출소 직후 한 구청 가정복지과에서 근무했다. 재판을 받기 전부터 경기도의 한 병원 원무과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는데 출소 후 남은 의무복무기간을 채워야 해 재취업한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A씨를 다시 한 번 강씨의 올가미에 엮이게 하는 지름길이 됐다. 그는 구청에서 검색을 통해 A씨에 대한 모든 신상정보를 파악했다. 앞서 ‘n번방’ 운영자들은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공익요원들을 포섭했는데 강씨 또한 그 중 한 명이다. 강씨는 조씨에게 성 착취 피해자나 회원 등의 개인정보를 넘겨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A씨는 “개인정보 유출과 협박으로 실형을 살다 온 사람에게 손가락만 움직이면 개인정보를 빼갈 수 있는 자리에 앉게 했다”며 “온 가족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자’고 하면서 힘들게 노력했던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강씨 신원은 공개될 수 있을까

A씨의 요구대로 강씨의 신원은 공개될 수 있을까. 현재 ‘n번방’ 사건 운영진을 비롯한 성착취 가담자들의 신원을 전부 공개하라는 여론이 강하게 일면서 정치권 등에서도 그 필요성을 공감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n번방’ 회원 가운데 공직자가 있는지 파악해보고 확인될 경우 중징계는 물론 신원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수사가 마무리되면 절차와 규정에 따라 국민들의 요구에 어긋나지 않게 불법행위자를 엄정 처벌하고, 신상공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국회에서 “관계자 전원 처벌 및 신상공개가 가능하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해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현행법의 한계로 모든 가담자들의 신원이 공개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등에 따라 아동ㆍ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배포, 소지한 죄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자는 신상공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강씨 또한 어떤 수위의 처벌을 받는지에 따라 신상정보 공개 여부가 갈릴 수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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