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조문수 한국카본 회장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20년 만에 전면 개편된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이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다지 획기적인 내용은 없으나 법 개편을 통해 이른바 ‘소부장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확실히 한 것만도 다행이다.
사실 지금까지 정부나 우리 산업계에서 소부장 산업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고 그 결과 일본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소부장 산업, 특히 소재산업 육성에 대해 맹렬하게 달라붙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일본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방 소재 중견기업으로 수십 년을 소재 개발에 몰두해온 한국카본에 관심이 간다. ‘낚싯대에서 항공기까지’ 소재 개발에 전력을 투구하는 기업이다. 한국카본은 국내 최초로 산업용 목적으로 탄소섬유를 상용화해 세계 낚싯대 시장을 석권하면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이후 한국카본은 스포츠레저는 물론 건축 조선 자동차 항공 방산에 이르기까지 탄소섬유 복합소재를 전세계 국가에 공급하고 있다. 소재 자립화에 성공한 몇 안 되는 국내 기업 중 하나다. 미래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하고 있다. 이스라엘 최대 국영 방위산업체인 IAI(Israel Aerospace Industries)사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군ㆍ민간용 유ㆍ무인기를 개발ㆍ생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조문수 한국카본 회장을 만나 소재산업의 현주소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스라엘 출장 때 인터뷰 시기를 늦추자고 연락이 와서 놀랐다.
“얼마 전 이스라엘에 출장을 갔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이틀간 호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식사도 방에서 했다. 다행히 이스라엘 정부의 출국 승인이 났다.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터키를 거쳐 귀국했다. 이스라엘에서 그 나라 최대 국영방산업체인 IAI사와 업무회의 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복합소재 최대 전시회‘JEC WORLD 2020’에 참여하려 했으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전시회도 5월로 연기됐다.”
-그래도 성과는 좀 있었나.
“우리 회사는 개인용비행체(PAV) 관련 산업이 곧 도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2018년 세계 최초로 무인기를 생산하고 세계적 기술을 보유한 IAI사와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 이번 이스라엘 방문은 양사가 개발한 무인기의 시험 비행을 위한 업무협의 일정 때문이었다. 호텔에서 겨우 IAI와 미팅을 할 수 있었다. 우리의 노력 덕분에 IAI 측에서 새로운 제안을 받는 성과가 있었다. 그간 한국카본에서 생산한 재료 사용에 미온적이던 IAI가 무인기 외에도 우리나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제작하는 미국 민간 항공기 걸프스트림(G280)의 주날개(main wing)에 우리 회사 재료가 들어가도록 재료 인증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재료 인증을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소요되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절충교역이라는 방식을 채택하여 충당하는 방안도 협의했다. 절충교역은 IAI가 한국에 판매하고 있는 무기에 상응하여 한국 제품 구매 혹은 기술이전을 해주는 방식이다.”
-항공기 소재를 만든 경험이 있나.
“현재 항공기에 사용되는 복합재료 부품과 그 재료는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구조재의 경우는 100% 외국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항공기 내장재용 소재를 2019년 미국 보잉사로부터 인증 받았고, 다른 7종의 재료도 인증 중에 있다. 현재는 내장재용에 국한되지만 IAI와의 협력을 통해 무인기 구조재에 우리 재료가 사용되고 향후 타 항공기로 확대 적용된다면 한국의 항공부품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항공기에 사용하려면 재료의 인증이 필요하며 이러한 작업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선진국에서는 개별 기업의 투자는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지원한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재정 지원을 해준다면 한국 항공재료 산업의 기술적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처럼 중견기업이 모든 비용을 지불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벅찬 상황이다.”
-한국카본 소재를 채택해주는 기업이 있어야 할텐데.
“개발된 재료를 실제 기체에 적용할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 IAI와는 무인기부터 실제 적용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러한 적용 실적이 쌓이고 메이저 항공기 제조업체로부터 사용 승인을 획득하면 현재 외국 업체로부터 구매하는 가격보다는 우리 제품이 훨씬 저렴할 수 있다. 이는 곧 국내 기업의 이익을 증대할 수 있는 길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우리 정부가 소재ㆍ부품ㆍ장비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인다.
“지난해‘무인이동체산업엑스포’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을 만났을 때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탄소섬유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자금을 투입해 국산화를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으나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극단적으로 한국이 탄소섬유를 더 이상 생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강하게 반대한 이유가 궁금하다.
“최근 정부의 소재산업 육성ㆍ지원 정책에 따라 효성이 전주에 신규 라인을 증설했고 경북 구미에는 도레이의 탄소섬유 생산라인이 있다. 국내에 소요되는 수량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 매우 작은 양이라 지금의 생산라인만으로 충분하다. 당장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추가적 증설은 필요 없다. 지금도 해외 수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의 거대 시장인 중국에는 제대로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중국과 맺은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른 규정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정인가.
“탄소섬유 복합재료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출되는 경우 한국에서 발생되는 관세는 0%다. 반면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은 관세가 17.5%다. 엄청나게 불리하다. 이런 상황에 탄소섬유 생산라인 신규 투자는 무의미하다. ‘시장이 있으면 기업은 투자하기 마련’이라는 얘기를 했다. 올해로 한중 FTA를 맺은 지 5년이 됐다. 그간의 실적을 따져 재협상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꼭 개정이 되어 양국 기업이 동등하게 경쟁했으면 좋겠다.”
–방위산업 전망은 어떤가.
“방위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수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국내 수요는 한정적인 반면 수출을 통한 양적 성장이 가능하다. 특히 우리 같은 소재 전문업체에게 양적 팽창은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다. 현재 방위산업은 소량의 제품생산 및 개발비로 인한 원가상승이 발생한다. 전력 배치 시 어느 정도 물량이 발생하지만 배치가 완료된 이후부터는 최소발주수량(MOQㆍminimum order quantity)에도 미치지 못한 생산으로 막대한 유지비가 들어가게 된다. 이는 원가상승 및 방산비리로 연결될 수 있으며, 저렴한 중국산 소재에 대한 유혹과 함께 국내 방산업체의 자주국방에도 문제가 야기된다.
현재 한국은 우수한 방산 제품을 생산하나 국제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세계시장 진입에 어려움이 있다. 만약 해외 수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면 원가 경쟁력도 확보가 될 것이다. 이런 내 주장은 방산업체인 한국화이바의 대표이사를 오래 해오면서 느꼈던 아쉬움이다. 현재 한국카본의 이 분야 사업은 재료와 일부 부분품부터 시작하고 있다. 당사는 기초 재료와 부품의 코스트 경쟁력이 결국 완성품의 경쟁력과 수출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이는 높은 원가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회사의 소재지가 대도시 아닌 경남 밀양이라는 작은 도시라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다.
“우수 인력 채용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물론 복합소재 분야라는 특수성 때문에 기존 연구 인력의 채용보다는 우리 회사에서 발굴 육성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에 복합소재 분야가 많이 확대되었다. 따라서 구축되어 있는 설비, 인력 등을 어떻게 네트워킹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최근에는 자동차 부품용 복합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소재는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응용기술 확보를 위하여 영국에 사무소를 설립했다. 또 밀양 본사의 기초재료 연구소와는 별도로 제품 상용화를 위한 연구소를 서울 마곡연구산업단지에 구축할 계획으로 올해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단순한 연구에서 벗어나 고객들의 요구를 바로 구현할 수 있는 파일럿(pilot) 설비를 구축해 즉각 대응할 생각이다.”
-규제 때문에 밀양에서는 공장 증설이 어렵다고 들었다.
“그래서 충북 보은에 신규 공장을 증설했다. 유리섬유 종이(glass paper)라는 것이 있다. 용도로는 가정용 장판지, 타일, 카펫 그리고 최근에는 건축용 불연재로 우리가 점유율이 높다. 이 제품 생산에 공업용 물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밀양 본사에 유휴 부지가 있지만 타 지역에 투자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수질오염총량제 때문이다. 생활 방식이 현대화하면서 오수 유입이 늘어나 하수종말처리장의 확장이 필요하지만 지방 인구 감소로 세수가 부족하다 보니 지자체의 여력만으로 한계가 있다. 결국 모기업이 있는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또 한국카본이 지방에 거점을 두고 있는 기업 특성상 인력 수급에도 한계가 있다. 중견기업에 속하다 보니 주 52시간 근무 규제도 그렇고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에 한계가 있다. 단순히 기업을 집단별로 분류하기보다는 조금 더 유연하게 도시 생활권과 지방 생활권의 고용 형태에 차등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개선해야 할 제도는 없나.
“한국카본은 2001년 LNG 화물창 보냉재(insulation panel) 사업에 진출했다. 특히, 국내 조선 산업의 발전과 함께 LNG 화물창 필수 자재인 강화 우레탄폼과 2차 방벽소재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소재인 2차 방벽 소재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역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하여 100% 우리 제품으로 대체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에 아쉬운 점도 많다. 보냉재의 주재료는 우레탄폼으로 완성되기까지 중간단계에서 제품의 안정화를 위하여 일정 기간 보관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야적장 부지가 많이 필요하다. 본사 공장의 신규 개발 부지, 밀양 내의 창고와 경남 인근의 창고까지 임대하여 연간 수억원의 임대료를 지불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공장 바로 앞에 유휴부지가 있는데도 10년 전 감사원 지적 사항이 있었다는 이유로 사용 허가가 나오지 않아 매우 안타깝다.”
-처음에는 낚싯대용 소재 생산부터 시작했다. 항공기 소재까지 만들게 된 것은 상전벽해 아닌가.
“부친(조용준 한국카본 명예회장)이 한국 최초로 복합소재 낚싯대를 만들었다. 낚싯대를 만들어 유명해졌던 은성사는 소재에는 관심이 없었다. 부친은 소재 개발을 위하여 1972년 한국화이바를 설립했다. 복합소재 낚싯대는 유럽에서 시작해 일본으로 전해졌고, 이후 한국과 대만으로 나뉘어졌다. 당시 일본 회사들은 대만을 선호했다. 한국화이바는 일본보다는 훨씬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었고 한국 중심으로 낚싯대 산업이 성장했다.”
-일본업체의 견제는 없었나.
“1980년 이전에는 유리섬유로 만든 낚싯대가 주류였으나, 이후 카본섬유 낚싯대가 개발되었다. 1984년 한국카본이 설립되면서 낚싯대용 소재 시장을 석권했다. 세계 낚싯대 생산의 60%가 국내에서 이루어질 때 이 중 80%에 대해 한국카본에서 재료를 공급했다. 그러자 일본 재료업체들이 한국으로 덤핑 공격했다. 하지만 한국화이바와 한국카본은 낚싯대에 쓰이는 유리섬유와 카본섬유 재료를 각각 생산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역으로 일본으로 덤핑 공세를 취했다. 한국카본 재료의 일본 점유율이 높아지니 협상 요청이 들어 왔다. 반덤핑 합의를 했고 그것을 계기로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베트남에도 공장을 설립했다.
“낚싯대용 재료의 개발과 경쟁력 있는 가격을 무기로 성장할 수 있었으나 인허가 문제로 밀양 지역에서 양산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국내에는 카본섬유의 원천인 아크릴 섬유를 울산의 태광산업이 생산하고 있어 카본섬유 생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불평등한 FTA로 인해 소재 산업의 판로가 확장되지 못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19년 베트남 호치민 인근에 공장을 설립했다. 중국과 아세안 국가의 FTA 협정에 따라 이들 국가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원가비율이 40%를 넘으면 관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 19사태로 세계경제의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 2030년으로 예측했던 에어택시 등 무인 수송체 분야의 활성화 시기가 급격히 빨라질 것이다. 고속도로에서의 화물수송 무인화, 소비자에게 화물을 전달하는 수직이착륙 무인기 시대가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려면 경량화, 대량 생산화라는 난제가 있다. 우리 회사는 경량화와 대량 생산 소재 개발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1997년 IMF로 회사의 경영이 어려웠을 때 당시 회장이던 부친은 본인과 내 급여만 50% 삭감했다. 식구나 마찬가지였던 회사 임직원의 임금은 깎지 않았다.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처럼 ‘더불어 함께 살아 가려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조재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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