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 AFP 연합뉴스

태평양에 배치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대거 발생해 해군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밀폐된 공간에 수천명이 상주하고 있어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우려가 크다.

31일(현지시간) 미 CNN방송 등에 따르면 루스벨트호 함장 브렛 크로지어 대령은 전날 국방부에 보낸 4쪽짜리 서한에서 “지금은 전시 상황도 아닌데 수병들이 죽을 이유가 없다”며 “당장 (코로나19 관련)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소중한 자산인 수병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호소했다. 함장이 직접 서한까지 보내 긴급 지원을 요청한 건 이례적으로 그만큼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

해상 작전 중이던 루스벨트호는 지난달 24일 수병 3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괌으로 긴급 이동했다. 정박 후 환자를 이송하고 접촉자를 격리했지만 확진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크로지어 대령의 서한을 처음 전한 일간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은 익명을 요구한 간부급 탑승자를 인용, “대략 150~200명이 코로나19에 걸린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보도가 사실일 경우 일주일 만에 감염자가 최소 50배 폭증한 셈이다.

크로지어 대령은 “선원 대부분을 하선시켜 2주간 격리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현재 루스벨트호에는 해군 장병뿐만 아니라 비행사와 해병대 등 4,000여명이 승선해있다. 그는 “전함이라는 태생적 공간의 한계 때문에 물리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다”며 “밀집된 선내와 공동시설은 바이러스가 확산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선원들을 수용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토머스 모들리 해군장관 대행은 CNN에 “선원들을 하선시키기 위해 며칠간 노력했지만 괌에 격리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호텔 부지에 텐트 등 임시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기와 비행기, 핵발전기가 실려있는 항모는 일반 크루즈선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화재 예방, 전투태세 유지 등을 위해 필수 인력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대응이 더 까다롭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코로나19에 감염된 미군 병사는 총 716명이다. 미 해군 7함대 소속 핵 항모인 로널드레이건호에서도 승무원 다수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집단감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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