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한국일보] 텔레그램 내 n번방 등 성착취물 공유 대화방을 모니터링하는 익명 단체 '프로젝트 리셋' 활동가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를 찾아 인터뷰하고 있다. 한설이PD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이를 최초로 수면 위로 드러낸 데 큰 역할을 한 ‘익명의 감시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들의 끈질긴 추적과 공론화를 위한 노력이 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등의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활동에 대한 어려움도 토로한다. 어떤 사명감에 ‘감시자’로 나서긴 했지만 각종 위험이 적잖아 철저히 비밀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어서다.

최근 n번방에 대한 검ㆍ경의 전방위 수사를 이끌어내는 데엔 익명의 감시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 n번방을 최초 신고한 ‘추적단 불꽃’, 텔레그램 성착취방을 집단 모니터링 하는 ‘프로젝트 리셋(Project ReSETㆍ리셋)’, 텔레그램 본사의 수사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탈퇴운동을 펼친 ‘텔레그램 탈퇴총공’과 같은 단체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철저히 익명으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최근 이들의 공로가 알려지며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절대 실명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이들이 익명 활동을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혹시 모를 신변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여성단체인 리셋 활동가들은 앞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와 같은 활동가들을 어떻게 해버려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 신변 보호에 애를 쓸 수밖에 없다”며 “우리끼리도 서로의 본업이나 나이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가해자들에게 타깃이 돼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으려면 철저히 비밀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추적단 불꽃에서 활동 중인 대학생 2명도 같은 이유로 최근 경찰의 신변보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는 역으로 우리사회에서 여성 인권단체가 얼마나 활동하기 어려운지 보여주는 방증이란 지적도 나온다.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거나 여성 인권운동을 하는 이들은 상시적으로 폭력에 노출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추모집회나 혜화역 시위 당시 집회 참가자의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성희롱 발언을 퍼붓거나, 염산테러를 하겠다는 식의 폭력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성들이 익명으로라도 집단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낄 만큼 현재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끼지만 이런 폭력에 대한 경험 때문에 n번방 연대 움직임도 익명 활동 위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들이 익명 감시자로 나선 덴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온라인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온라인상에서 이뤄진 범죄는 잡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로 수사기관이 소극 대처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n번방 사건처럼 범죄가 고도화할수록 경찰이 모든 영역을 감시할 수 없는 만큼 ‘시민 감시자’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범죄 영역이 계속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제보ㆍ신고 없이는 경찰 기능이 제대로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며 “경찰은 모든 수사를 자신들이 전담하려고 하지 말고 시민 참여를 적극 받아들이는 동시에 공익 신고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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