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없이 온라인 생중계 하고 녹화 영상을 스트리밍
뮤지컬 ‘웃는 남자’ 27만명 접속
“공연장 찾지 않을 것” 우려도 낳아
“빨간 불이 들어오는 카메라를 쳐다봐 주세요.” “프롬프터 자막 확인할게요.”
TV 프로그램 녹화 스튜디오에서나 들릴 법한 대화가 클래식 공연장에서 오갔다. 지난달 31일 온라인 생중계를 앞둔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톡톡-로시니’ 리허설 현장이었다.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는 지미집을 비롯해 카메라 7대가 설치됐고, 생중계 제작진은 방송 직전까지 음향과 화면 색감, 출연자 동선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오페라단 직원들은 모니터 뒤에서 악보를 보면서 가사 자막을 화면에 띄웠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셧 다운’ 된 공연계는 무대를 ‘랜선’으로 옮겨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뿐 아니라 국립국악원, 경기아트센터, 마포아트센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이 지난달부터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를 하고 있고, 국립극장과 국립극단, 예술의전당, 서울예술단, 남산예술센터는 공연 녹화 영상을 스트리밍 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기술력 덕분에 온라인 공연 형태도 진화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는 국내 4대밖에 없는 3D 촬영 장비를 동원해 경기팝스앙상블의 공연을 가상현실(VR)로 생중계했고, 국립국악원도 VR로 제작한 공연 영상을 무료로 공개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탈춤극 ‘오셀로와 이아고’를 시청각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도록 국내 최초로 배리어프리 생중계로 내보냈다.
◇뮤지컬 ‘웃는 남자’, 온라인 2회 공연에 27만명 몰려
장르별 콘텐츠가 다양한 데다 접근도 쉬우니 ‘안방 1열’의 반응도 뜨겁다. 공연을 영상으로 본다는 이질감도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가 만든 ‘뉴 노멀(New Normalㆍ새로운 표준)’이 공연계에도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페라 톡톡-로시니’는 접속자 수 1만5,000명을 기록했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전체 좌석 수(443석)의 33배가 넘는 수치다. 관객들은 “공연 보면서 힐링 됐다” “빨리 공연장에 가고 싶다”며 댓글로 “브라보”를 외쳤다. “작곡가 로시니가 유명 미식가였다”는 진행자의 설명에는 “알고 보니 로시니는 맛집 블로거”라며 다같이 “ㅋㅋㅋ” 웃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엄숙한 클래식 공연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마치 스포츠 중계를 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경재 서울시오페라단 예술감독은 “무관중 공연이 처음이라 상당히 어색했지만 관객이 없으니 오히려 연주자들은 음악에 더 집중하게 되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며 “온라인 생중계가 공연의 본질을 흔드는 측면이 없진 않으나 궁극적으로는 관객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의 공연 영상 대거 공개에 쏠린 폭발적인 관심도 공연계의 뉴 노멀이 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013년부터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이라는 이름으로 영상화 사업을 해 온 예술의전당은 지난달 20일부터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과 ‘지젤’, 클래식 연주회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노부스 콰르텟’ 등 11편을 20회 상영했는데, 초반부 상영된 10회 공연을 합친 조회 수만 15만4,621건에 달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기록은 더 놀랍다. 2회 상영에 무려 27만 명이 접속했다. 실제 공연장에서는 수 차례 재연을 모두 흥행시켜야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공연 영상물, 새로운 시장 만들어 낼까
공연계에선 최근 ‘랜선 공연’의 인기를 지켜보며 향후에 공연 영상물이 또 다른 예술 장르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제작ㆍ유통 과정도 공연보다는 영화나 방송에 가까운 방식이라, 기존 공연 예술과는 구분된다. 이 같은 공연 영상물을 ‘라이브캐스트 시네마 시어터’라는 용어로 정의한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싹 온 스크린’처럼 그동안 국내 공연 영상물은 소외계층을 위한 공공적 역할에만 머물렀다”며 “이미 갖춰진 안정적인 인프라를 바탕으로 공연 영상 분야가 전문 영역으로 발전해야만 공연 예술의 보완제로서 산업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짚었다.
해외에선 이미 공연 영상물이 독자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2006년 시작된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의 ‘메트: 라이브 인 HD’, 영국 국립극장의 ‘NT라이브(내셔널 시어터 라이브)’가 대표적이다. ‘메트: 라이브 인 HD’과 ‘NT라이브’는 각각 메가박스와 국립극장을 통해 국내에서도 상영되고 있다. 공연과는 별도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상품이 된 것이다.
한편에선 이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해외와 달리 공연 예술 시장이 협소한 한국에선 오히려 온라인 공연과 공연 영상물 상영 서비스가 아예 공연장을 대체해 버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제작비 부담으로 민간 공연단체들은 쉽게 시도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민간 공연 10편을 선정해 온라인 생중계를 지원하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최근 활발해진 공연 영상화 시도를 산업으로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공연 영상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제작 지원,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 유통 과정 등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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