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함은 회장이나 대표이사, 셀프연봉으로 수백억원, 회삿돈은 쌈짓돈처럼, 변호사 곁에 두고 법률자문까지, 옥중경영은 기본, 진보ㆍ보수 넘나들며 정치권 인맥 과시도…’
대한민국 초대형 다단계 사기범들의 특징을 요약한 것이다. 회사 이름만 달랐을 뿐 이들은 실적에 따라 고수익을 보장한 뒤 다른 피해자들을 줄줄이 유인해 돌려 막는 고전적인 수법을 썼다. 그 중에서도 범죄액수가 1조원이 넘고 피해자가 수만 명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인 ‘다단계 범죄 4대 사기꾼’으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주수도(64) 제이유그룹 전 회장과 조희팔(사망 추정) ㈜엘틴 전 대표, 김성훈(50) 전 IDS홀딩스 대표, 이철(55)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의 이야기다.
2년 전 구치소에 수감돼 한동안 잊혀졌던 이철 VIK 대표는 최근 언론에 다시 소환됐다. 이철 대표를 둘러싼 검찰과 언론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VIK 사기사건과 이철 대표의 정치권 인맥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7,000억원대 투자사기 혐의로 지난해 징역 12년이 확정된 가운데, 올해 초 2,000억원대 범죄가 추가로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았다.
이 대표는 비상장 주식 등에 투자해 고수익을 내주겠다며 돈을 끌어 모았지만, VIK는 관리수수료 명목으로 투자 받은 돈의 20%를 공제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 손실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돌려 막기로 돈을 주면서도 VIK는 투자 수익금으로 지급하는 것처럼 피해자들을 속였다. 범행기간 4년에 피해자는 3만명에 달했다.
IDS홀딩스는 물품을 매개로 저질러진 과거 다단계 사기범죄와는 달리 외환거래라는 신종수법으로 돈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VIK와 마찬가지로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미인가 업체라 태생부터 불법을 잉태하고 있었다.
김성훈 전 IDS 대표는 1조원 사기사건으로 2016년 9월 구속되기 전 유사한 혐의로 두세 차례 경찰 수사를 받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자신감이 붙은 그는 외환거래를 통한 원금보장과 고수익을 내세워 투자자들을 모았지만, 먼저 투자한 사람들의 수익금을 돌려 막기 방식으로 지급했다. 범행기간 4년 10개월 동안 피해자는 1만2,000여명, 사기금액은 1조1,000억원에 달했다. 법적 심판은 징역 15년으로 마무리됐다. 김 전 대표는 검찰에서 자신의 계좌에서 출금된 수백억 원대 현금의 종착지에 대해 “사용처를 밝힐 수 없는 돈도 있는 법”이라는 뼈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제이유그룹 전 회장 주수도씨는 정치권과 법조계 인맥을 활용해 사기행각을 벌인 인물이다. 물품을 매개로 한 국내 1세대 다단계 사기범으로 꼽히는 주씨는 여당 정치인과 검찰 수사관에게 정치자금과 뇌물을 건네며 각종 청탁에 나섰다. 그는 구속된 뒤에도 옥중경영을 이어가며 피해를 키웠다. 2007년 징역 12년이 확정돼 지난해 출소할 예정이던 주씨는 옥중에서 벌인 사기행각이 드러나 수감기간 만료 전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주씨의 2조원대 사기극이 2006년 드러나자, 당시 어마어마한 범죄금액에 놀란 검찰총장이 ‘단군 이래 최대 사기범죄’로 규정하기도 했다.
조희팔 사건도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평가 받는 희대의 사기극이다. 수사당국은 주범 조희팔이 사망한 것으로 결론짓고 범죄수익 일부를 찾았지만, 피해회복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조희팔이 2006년 설립한 ㈜엘틴은 ‘건강보조기구 대여업으로 연 60~70%의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 속여 5조원 넘는 돈을 끌어 모았다. 2년여간 폐업과 설립을 반복한 법인 24곳을 통해 7만여명이 피해를 입었다.
돌려 막기 수법을 통한 네 사람의 범죄금액을 합하면 10조원에 육박한다. 이들의 사기극으로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린 사람은 수십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내려진 법의 처벌은 평균 징역 15년에 불과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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