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클럽 맨] <5> FC서울 경비ㆍ보안담당 19년차 용혁순씨
2002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프로축구 K리그에서 ‘안전’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경기 시작 때마다 붉게 타오르던 홍염 응원은 기본, 선수ㆍ심판에게 물병부터 심지어 응원용 확성기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날아들던 때도 있었다. 월드컵 개최 바로 전인 2001년까지도 서포터간 싸움에 쇠파이프가 등장했고, 경기장 안팎에선 흥분한 팬들의 욕설이 난무했다. ‘축구장에 버너 들고가 삼겹살 구워먹었다’던 무용담도 그리 충격적이지만은 않던 시절이다.
FC서울 홈 경기장 경비ㆍ보안담당 업무만 20년 가까이 맡고 있는 용혁순(44)씨도 초년병 시절 얘기엔 고개를 젓는다. 헌병특별경호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2002년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안업체에 입사했다는 그는 본보와 인터뷰에서 “처음엔 축구팬들이 분단장보다 무서웠다”며 “월드컵 개최 전까지만 해도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았지만, 월드컵 이후부턴 갈수록 관중문화가 성숙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흔히 ‘가드(guard)’로 불리는 경비담당자들은 관중과 선수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있다. 구체적으론 9개 팀(VIPㆍ선수단ㆍ그라운드ㆍ미디어ㆍ주차장ㆍ게이트ㆍ관중석ㆍ매표소ㆍ광장)으로 나뉘며, 이를 용씨가 총괄한다. 용씨는 “평일 오후 7시 경기가 열릴 경우, 9개 팀장은 오전 10시부터 모여 구단과 시설관리공단은 물론 경찰과도 안전과 관련해 논의한다”며 “시설물 점검과 당일 투입될 스태프들의 소양교육 등을 진행하고 입장을 개시한다”고 했다.
입사 때와 비교해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스태프 규모다. 2002년만 해도 경기당 100명이 채 안 됐지만, 이젠 200명 안팎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용씨는 “과거엔 경기 운영에 꼭 필요한 인원만 배치했다면, 지금은 외국인 응대인력 등 관중 편의를 위한 안내요원도 크게 늘었다”고 했다. 여성과 어린이 관중이 크게 늘어난 점도 큰 변화 가운데 하나다.
가장 큰 고충은 긴장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불규칙적인 식사에서 오는 만성 위염. 대체로 무전이 뜸할 때 눈치껏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5분 이내에 ‘흡입’한 뒤 다시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 5분 간의 도시락 타임마저도 수원 삼성과의 ‘슈퍼매치’가 열리면 보장되지 않는다. 해마다 다르지만 3만명 넘는 관중이 몰릴 때가 많아 평소보다 100명 정도의 스태프가 더 투입 된다. 용씨는 “슈퍼매치 날은 폭식하는 날”이라며 “경기장에선 먹을 시간이 없어 경기 후 회식 때 폭식을 한다”고 했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별 탈 없이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무사히 경기장 주변을 빠져나갔을 때다. 그는 “예전엔 우리들에게 괜히 화풀이 하는 관중도 많았지만 요즘은 경기 후 ‘고생하셨다’며 인사해주는 관중들이 더 많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홈 관중들이 웃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날이 더 많았으면 한다”며 에둘러 서울의 활약을 기대했다.
편한 날은 관중 없는 날이요, 고통스러운 날은 관중 많은 날이지만 둘 중 하나 고르라면 두 말 않고 고통을 택하겠단다. 구단한테 부탁하고 싶은 점을 묻자 “더 많은 관중을 유치해 우리를 더 괴롭혀주시면 고마울 것 같다”고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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