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금가루 은가루가 솟구치며 축포가 울리고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그냥 걸었을 뿐인데요. 낯선 곳으로 이사 와서 만난 낯선 시간과의 대치가 너무 버거워서요.
어디 낯선 시간만 이유였겠습니까? 이사도 나이에 따라 무게와 느낌이 다르더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그럴싸한 말로 백 세 시대를 내세워도 이제는 늙어 갈 일이 가장 확실한 시간에 제가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겠지요? 마음이 비장해지며 마지막 이사라는 것에 자꾸 방점을 찍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아들네와 가깝게라는 애초의 이사 이유를 생각하면 너무 다른 결과였지요.
평생 엇박자였던 머리와 가슴이 처음으로 같은 온도로, 같은 속도로, 같은 숨을 쉬었습니다. 신기했지요. 살아오는 동안 참 괴로웠던 게 머리와 가슴이 따로 제각각이라는 거 때문이었거든요.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니면 머리로 납득은 안 되는데 가슴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품이 열어지는, 그런 적 당신도 있지 않나요? 물론 그것의 순기능은 알지요. 머리와 가슴이 따로, 엇박자인 건, 그 자체가 균형이라는 걸요. 정체되어 있을 때는 밀어주고, 너무 나간다 싶으면 당겨서 멈춰주며, 그 둘은 성실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내고 있는 거라는 걸요.
머리와 가슴이 합체를 이루자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정직한 인식이었습니다. 꿈과 소망과 기도... 이런 거에 의지해 온 ‘가슴’과, 보고 듣고 경험해 온 ‘머리’가 동시에 작동하자, ‘마지막 이사’라는 생각은 재빠르고 튼튼하게 그 반경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가슴과 머리가 따로 놀지 않으니 숨만 쉬어도 눈물이 났습니다. 예전 같으면 머리가 바로 작동했겠지요. 가슴에 얼음물을 퍼부었을 겁니다.
자기연민이라고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스스로를 가엽게 느끼고 애틋하게 여기는 게 사실 뭐가 나쁩니까? 남에게는 장려하는 측은지심이 왜 자기 자신에게 향하면 못난 사람, 약한 사람이 되는 겁니까? 물론 나도 거기에 휩쓸려 살아오는 내내 가장 경계해 왔던 게 자기연민에 빠지는 거였습니다. 평생 고역인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것도, 가슴으로 느껴지는 걸 막아 내고 덜어 내려 늘 용량 초과로 머리를 가동시켰기 때문입니다. 평생 부실한 소화 능력으로 위경련 단골 환자가 된 것도, 역시 용량 초과로 가슴에 열을 지폈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인지하는 대로만 따라갔다면 어쩌면 벌써 얼어 죽었거나 사지가 굳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랬던 머리와 가슴이 같이 움직이는 겁니다. 고백은 저절로 나왔습니다. 머리로 알게 되는 걸 모른 체하기 위해 가슴을 얼마나 전력으로 가동했는지 말입니다. 가슴이 먼저 건너가는 일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 머리는 또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도요. 아주 생경하고 아주 통쾌하며 아주 신기한 세상과의 접속이었지요.
그래서 나가보았던 겁니다. 애틋해서요. 집에 들어온 먼지 하나도 눈물겨워서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늙어가다 언젠가 떠날 집이라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제어해 줄 머리까지 이제는 가슴이 느끼는 것에 동조해 주고 있으니, 우선 나를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겁니다.
가장 정직한 나는 그렇게 만났습니다.
걸었지요. 처음엔 삼천 보쯤 걷다가 다음엔 오천 보, 육천 보, 그러다가 만 보를 걸었고 만칠천 보까지 걷게 되었습니다. 내가 걷는 길은 탄천 산책로인데 첫날 걸어보고 나는 그 길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걸음 수만큼 새로 이사 온 이곳이 보였지요. 본 것들의 반경이 넓어진 만큼 조용해지고 있는 내가 보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평화로워지고 있습니다. 머리도 가슴도 이젠 억지로 작동시키지 않을 겁니다. 머리로 안 되면 가슴을 작동시켰고, 가슴으로 벅차면 머리를 채근해 유지하고 끌고 온 모든 거, 이젠 안 할 겁니다. 이 집에서는 이제, 머리와 가슴을 온전하게 제 자리에 놓고 바라보고 인정하며 진짜 나로 살아갈 겁니다. 마지막 이사면 어떻고 마지막 집이면 어떻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 귀하게, 더 사랑하며 살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길 눈길 닿는 어느 하나에도 가진 애정 다 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울컥하면 큰 소리로 떳떳하게 울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당당하게 기록으로 남길 겁니다.
어제는 걷는 중에 어떤 노래 제목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벚꽃엔딩! 참 아름다운 제목입니다. 엔딩에 벚꽃이 선행되니 어쩌면 이리도 환하고 눈부신지요. 지금 세상은 벚꽃 천지입니다. 벚꽃이 지듯이 사람도 그렇게 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형형색색의 축포 아래 오늘도 서 있습니다. 아들이 핸드폰에 깔아 준 만보기의 막대그래프가 연일 죽죽 올라갑니다. 설정을 육천 보로 해 준 아들에게 자꾸 자랑할 거리가 쌓이고 있습니다.
유튜브로 듣는 벚꽃엔딩이 온 집안에 가득합니다. 잠시 서성여도 된다고 가슴과 머리가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긍정적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서석화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