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은 고향 친구들 간 사랑과 우정, 질투와 화해를 그린 영화다. 부안 곳곳을 배경으로 찍었지만 영화 제목은 ‘변산’이다. 아무래도 부안보다는 변산이 익숙한 지명이기 때문이다. 부안 읍내에서 시작해 촬영지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읍내 군청 앞 골목은 오래되고 낮은 건물이 양편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낡은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도로와 인도는 말끔하게 단장했고, 곳곳에 앉아 쉴 공간도 만들어 공원을 산책하듯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별빛으로’라 명명한 이 길 초입에 ‘소우’라는 일식당이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학수(박정민)가 좋아한 미경(신현빈)의 피아노 학원으로 등장하는 집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오래된 주택을 식당으로 꾸몄다. 내부 벽면을 담백한 파스텔 색깔로 단장하고 마당으로 통유리창을 내 카페 같은 느낌이 든다. 메밀국수와 덮밥이 주 메뉴지만 커피도 판매한다. 소우(小雨)는 잠시 동안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인근 ‘물의 공원’은 학수와 여자 주인공 선미(김고은)가 밤거리를 거니는 장면에 등장한다. 물고기가 다이빙하는 듯한 분수 조형물 주변으로 물이 흐르는 거리를 조성해 놓았다. 거리 양편으로 다양한 식당이 포진하고 있다. 온라인 지도에선 ‘물의 공원’ 대신 ‘수정길’로 검색해야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안 읍내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변산반도를 한 바퀴 돌며 촬영지를 찾아간다. 대항리패총 부근 언덕은 학수가 어머니를 떠올리며 무심한 듯 그리운 듯 노을을 응시하던 곳이다. 바로 앞에는 이름 없는 작은 해변이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풍경이 오히려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다.
채석강은 변산반도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오랜 세월 쌓인 퇴적암이 층층이 절벽을 이룬 지형으로,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해 붙은 지명이다. 영화에서는 학수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의 배경으로 나온다. 채석강 부근 수성당도 변산의 명소다. 바닷가 언덕에 자리한 당집 주변으로 아찔한 바위 절벽과 대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다. 입구에는 소규모로 유채꽃밭을 조성해 놓았다.
채석강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언덕 하나를 넘으면 모항이다. 시인 안도현이 ‘모항가는 길’에서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건 촌스럽다고 극찬한 곳이다. 바다로 살짝 돌출된 지형 양편으로 해수욕장과 항구가 등지고 있다. 반달처럼 휘어진 모래사장이 더없이 아늑하다.
모항해수욕장에서 7km를 더 이동하면 작당마을이다. 떼를 지어 일을 꾀한다는 ‘작당모의’가 먼저 떠오르는데, 실제는 뒷산 ‘까치봉’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마을 앞으로 질펀한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영화에서 학수와 친구 용대(고준)가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묵은 감정을 풀어낸 곳이다.
변산반도 드라이브의 마무리는 내소사다. 내소사는 일주문부터 사찰까지 약 600m 구간 이어지는 전나무 가로수 길이 운치 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400여년 전 사찰을 중건할 때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산자락으로 번지는 봄꽃과 초록에 눈길이 쏠리기 마련인데, 대웅전의 꽃무늬 문살도 놓치지 말아야 할 내소사의 자랑거리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피어 있는 정교한 나무 꽃이다.
부안군청을 출발해 채석강ㆍ모항ㆍ작당마을을 거쳐 내소사까지는 약 52km다. 하루를 잡으면 여유롭게 변산 한 바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부안=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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