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전례 없는 180석 압승…국회 장악
제 무덤 판 야당 참패, 대선 길 불투명
개혁 팽개친 ‘위성 꼼수’ 흑역사 숙제로
코로나19 광풍 속에서도 탈 없이 치러진 21대 총선은 승패를 떠나 ‘코로나 한국’의 세계적 위상을 한층 높였다. 해외 언론은 거리 두기는 물론 비닐장갑ㆍ마스크 수칙 등을 지키며 마감시간까지 길게 늘어선 투표행렬을 보고 또 한 번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꼼수와 편법을 부리며 비례 위성정당 대결로 정치를 희화화한 4ㆍ15 총선의 부끄러운 흑역사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쓰나미 같은 압승에 놀란 승자를 축하하고 해체 위기에 몰린 패자를 마냥 위로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진영 대결이 심화되고 지역주의가 부활한 총선 결과를 보며 희망과 기대보다 우려와 과제가 앞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여당의 예상 밖 압승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1996년 15대 총선 이후 최고를 기록한 투표율(66.2%)이다. 20대 총선의 두 배가 넘는 사전투표율(26.7%)에서 그런 낌새가 감지됐지만, 국민의 일상을 삼킨 코로나 국면에서 이런 투표율이 나온 것은 따져볼 구석이 적지 않다. 정책과 이슈로 유권자를 끌어들였다기보다, 거대 양당이 죽기살기식 진영 논리로 지지층을 결집한 흔적이 짙어서다. 여당이 갈라지고 쪼개진 민심을 외면한 채 21대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선까지 확보해 입법부 세력 교체까지 완성했다고 환호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야당의 참패는 나태하고 무능한 보수세력이 제 무덤을 판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선거까지 3연패하고도 보수는 리더십 공백에 허덕이며 와신상담하거나 절치부심하는 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혁신과 통합을 내세운 황교안 체제가 들어섰으나 탄핵과 5ㆍ18, 세월호 문제에 눈치 보기로 일관했고, 기득권 벽에 막혀 외연 확장을 위한 통합 역시 뒷전이었다. 패스트트랙 투쟁은 명분도 실리도 잃은 최악의 카드였다. 극우 여론에 끌려다니며 ‘닥치고 반대’로 허송세월한 1년은 진지 구축의 기회와 이념 무장의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선거를 두 달 앞두고 허겁지겁 빅텐트를 치고 묘수로 비례정당을 만들었지만 그게 패착이자 자충수일 줄은 몰랐을 게다. 공천 잡음과 막말 파동은 양념일 뿐이다.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원칙 없는 승리’를 거둔 여당도 낯 뜨겁긴 마찬가지다. 집권당 사상 유례없는 압승으로 모든 허물을 털어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은 코로나 처방에 이르기까지 대안 없이 정부 뒷덜미만 잡는 야당의 행태를 심판한 것이지, ‘비난은 잠시, 책임은 4년’이라는 내로남불 이중잣대를 용인한 것은 아니다. ‘의석 도둑’을 잡겠다며 어렵게 얻은 정치 개혁의 기회를 차버린 대가는 조국 사태로 불거진 공정성 이슈처럼 두고두고 여당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짙다.
사실 이번 결과는 문재인 정부 3년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코로나 총선’에서 누가 더 헛발질을 많이 했는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다. 그런 만큼 여당은 흥분을, 야당은 울분을 삼키고 겸허히 자신을 채찍질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당은 당장 윤석열 검찰을 향해 개혁 칼날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지도부 공백과 패닉에 빠진 야당을 압박하며 국회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양당 체제로 회귀한 정치 상황은 극단적 대결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야당의 이빨이 빠졌다 해도 여전히 100석이 넘는 세력이니 말이다.
지나치면 역풍을 부르고,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승자의 저주’라는 경구의 맥락도 같다. 야당의 정권 탈환 꿈이 멀어지고 여권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는 계속되고 민심은 늘 요동치는 법이다. 당장 우리 앞에는 코로나19로 망가진 삶을 치유하고 후폭풍을 극복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정치권이 손잡아야 가능한 일이다. 선거 기간 입 안의 도끼로 상대뿐 아니라 제 몸까지 찍은 정치권은 당분간 ‘묵언수행’하듯 말을 아끼고 역지사지하며 정치의 존재 이유를 되돌아보기 바란다. 때로는 침묵이 고함보다 훨씬 강하다. 21대 국회를 준비하는 지금이 바로 그때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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