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엔 바이러스가 없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극지연구소에 들어온 이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바이러스에 관한 것이다. 남극은 최저 관측치가 영하 90도에 이를 만큼 추운 곳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견딜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남극에도 바이러스가 있다. 남극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지만 외부에서 숙주 동물을 통해 유입되는 사례가 있다. 특히 여름이면 펭귄이나 도둑갈매기 같은 많은 동물이 남극에 모여드는데, 이때 바이러스가 함께 들어올 수 있다. 지난 2012년 고려대 송진원 교수 연구팀은 세종기지 인근에서 채취한 남극도둑갈매기 시료에서 신종 아데노바이러스를 발견하고 그 염기서열을 밝히기도 했다. 남극에 모여드는 사람 역시 매개체가 될 수 있는데, 하계 기간 기지를 방문하는 연구원을 통해 바이러스가 들어올 수 있다. 실제로 기지 내 의료실을 찾는 사람들의 다수가 감기 환자인데,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콜록콜록 기침을 시작하면 금세 감기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다. 그래서 기지 방문자 오리엔테이션 때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은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몸이 나아질 때까지 방에서 격리된 채 휴식을 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남극뿐 아니라 북극에서도 바이러스는 흔하게 관찰된다. 지난 2002년 북대서양에 사는 참물범(Harbor seal) 수천 마리가 떼죽음 당했고, 이어 2004년 알래스카 해달(Sea otter)이 비슷한 증상으로 죽는 일이 있었는데, 사체를 부검한 결과 물범 홍역 바이러스(Phocine distemper virus)가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홍역 바이러스는 본래 개과 동물에서 발생하는 호흡기 질환 바이러스인데, 여러 차례 변이를 거쳐 극지에 사는 해양 포유류에도 나타난 것이다. 최근 미국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알래스카와 러시아 근해에 살고 있는 물범, 바다사자, 해달의 바이러스 감염 사례를 분석한 결과 북극의 해빙 감소와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해빙이 감소함에 따라 물리적인 장벽이 없어진 동물들이 접촉할 기회가 증가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동안 서로 마주칠 기회가 없던 종들이 새로 만나게 되면서 감염이 확산되고 변이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해빙을 둘러싼 생태계가 변하면서 먹이원이 감소해 이동거리가 길어지고, 전체적으로 건강 상태가 떨어져 질병에 취약해질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온난화의 추세라면 앞으로 해빙이 감소하는 속도가 더 가파르게 빨라질 것이고, 극지방 동물의 바이러스 감염과 집단 폐사는 더 빈번해질 것이다. 또한 물범을 사냥해서 먹는 원주민들도 있기 때문에 언제 인간에게 전파될지도 모를 일이다. 바이러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우리는 바이러스의 창궐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글ㆍ사진=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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