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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좇던 25살 알바생, ‘레전드’ 재활공장장 되다

입력
2020.04.19 16:03
수정
2020.04.19 18:4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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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클럽 맨] <6> 인천 유나이티드 스포츠메디컬 수석 트레이너 이승재씨

#K리그는 팬들과 접점인 선수와 지도자는 물론, 구단이 운영되는 데 없어선 안 될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아래 성장하고 있습니다. 구성원 가운데도 한 자리에 오랜 시간 머물며 K리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원 클럽 맨’들의 삶과 보람을 전합니다.

17일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승재 스포츠메디컬 수석 트레이너가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의무 가방을 안은 채 엄지를 치켜 세우고 웃어 보이고 있다. 인천=배우한 기자
17일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승재 스포츠메디컬 수석 트레이너가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의무 가방을 안은 채 엄지를 치켜 세우고 웃어 보이고 있다. 인천=배우한 기자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푸른색 의무가방을 들쳐 맨 그가 그라운드에 등장하면 일순간 긴장감이 흐른다. 선수의 부상을 살펴 본 그의 손짓에 따라 선수의 교체 여부가 정해진다. 그의 선택이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순간이다. 의무트레이너가 그라운드에서 호흡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K리그1(1부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스포츠메디컬 수석 트레이너 이승재(42)씨는 이 매력에 사로잡혀 직업을 택했다. 체육학을 전공했던 그는 “그라운드에서 같이 호흡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매력적이었다”며 “당시에 이 분야는 미지의 영역이라 발품 팔아 공부했다”고 회상했다. 무급으로 실습에 참여하고, 의학 세미나를 기웃거렸다.

이내 기회는 찾아왔다. 창단 준비 중이던 인천에서 의무트레이너로 일할 ‘알바생’을 모집했던 것. 3개월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눈 여겨 본 구단이 아르바이트 기간이 끝나자 다시 계약하자며 그를 붙잡았다. 그렇게 구단을 믿고 함께해온 시간이 벌써 19년이다. 꿈 많던 알바생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17일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승재 스포츠메디컬 수석 트레이너가 인천 문학경기장 내 트레이닝실에서 후배에게 재활치료법을 시연하고 있다. 인천=배우한 기자
17일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승재 스포츠메디컬 수석 트레이너가 인천 문학경기장 내 트레이닝실에서 후배에게 재활치료법을 시연하고 있다. 인천=배우한 기자

부상 선수가 완벽 복귀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다 보니 이제 이 트레이너는 레전드 ‘재활 공장장’으로 성장했다. 시즌이 종료되면 해외로 나가 공부하기도 하고, 호주ㆍ중국에선 재활 관련 자격증도 땄다. 꾸준히 학업도 병행해 이제는 대학 강단에도 선다. 이 트레이너는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꿈 하나로 산다”며 “그런 사람들이 의지와 상관 없이 은퇴하지 않을 수 있게끔 도움을 꼭 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 트레이너는 “부상으로 힘들어 하던 선수들이 인천에 와서 제 기량을 되찾는 모습에, 이곳이 ‘재활 공장’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웃어 보였다. 뛰어난 실력이 소문 나면서 스카우트 제의도 이어졌다. 그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요청이 들어왔다”며 “한 팀은 2~3배가 넘는 연봉 인상 제안을 약속하기도 했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그럼에도 이 트레이너는 인천을 놓지 않았다. 그는 “인천만의 ‘끈끈한 정’이 붙잡았다”며 “가족 같은 감독님, 프론트 직원 등과 함께 쌓아온 기억들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장외룡(61ㆍ충칭) 당시 인천 감독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기도 했다. 인천의 가능성도 한몫 했다. 그는 “인천이 최근 성적은 좋지 않아도, 1부 리그 잔류만큼은 꾸준히 지켜왔다”며 “포기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토닥이며 꿋꿋이 일어나는 모습에서 부활의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수많은 감독ㆍ선수와 함께했지만, 가장 마음이 쓰이는 건 유상철(49) 명예감독이다. 유 감독이 췌장암 선고를 받는 순간 그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이 트레이너는 “속이 좀 아프다고 하시길래 병원에 가자고 제안했는데, 함께 찾은 병원에서 (췌장암) 조짐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갑작스레 듣게 됐다”며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유 감독님 얼굴에서는 더 큰 상실감이 엿보였다”고 했다. 그는 이후 항암치료 과정에도 동석했다. 서로에 대한 적응을 마치고 색을 맞춰가던 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라 안타까움은 더 컸다.

지금은 새롭게 단장한 팀에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 트레이너는 “임완섭 감독님이 믿어주시니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긴장감이 큰 것도 사실”이라며 “맡은 바 최선을 다해야 할 때”라고 다짐했다.

인천=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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