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포기만 하지 마세요. 나이 별 거 아닙디다.”
[이런 2막!] 70대 보디빌더서 뮤지컬 배우 도전한 임종소씨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감정 넣고 목소리는 크게, 동선은 확실하게”
아들뻘 강사의 외침에 임종소(77)씨가 연신 마른 침을 삼킨다. 돋보기 안경을 고쳐 쓰며 복화술을 하듯 강사의 말을 되새긴다. 양손에는 손때가 잔뜩 묻은 대본을 든, 영락 없는 ‘신인 배우’다.
13일 서울 동대문구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에서 만난 임씨는 ‘아모르파티’란 작품(금옥분 할머니役)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 작품은 그의 데뷔작이 될 예정이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지난달 무대에 올랐을 뮤지컬 ‘유관순’(유관순의 어머니役)이 그의 첫 작품이 될 뻔했다.
임씨는 “집에서 두 시간이나 걸려 일주일에 세 번씩 이 곳에 오는데도 힘든 걸 모르겠다”며 “재미있으면 힘들지가 않더라”고 말했다.
◇휠체어 탈 뻔한 70대 보디빌더
사실 임씨에게 뮤지컬은 ‘이런 3막’이다. 그의 인생에서 뮤지컬은 세 번째 도전이다. 임씨는 원래 ‘70대 보디빌더’로 이름을 날렸다. 작년 5월 제24회 WBC 피트니스 오픈 월드 챔피언십 피규어 부문 2위(38세 이상부)의 주인공이 바로 이 ‘몸짱 할머니’다. 출전자 중 40대 이상은 임씨가 유일했다. 그런데 2등까지 거머쥔 것이다.
보디빌더라는 두 번째 도전을 하게 된 계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그는 허리 협착(요추 3, 4번)이 찾아와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했다. 난간을 잡지 않고선 계단 하나도 오르지 못해 휠체어까지 고민하던 처지였다. 임씨는 “두 발로 걸을 수가 없다니, 내 인생은 여기까지구나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빠르게 걷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저렇게 걸었던 적이 있나’란 생각까지 들었다. 병원에서 주는 진통제도 주사도 효과를 못 봤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 동네 헬스장이다. 개인 트레이너와 일주일에 세 번 가벼운 운동으로 재활을 시작했다. 한 달 뒤 거짓말처럼 허리와 다리 통증이 약해졌다. 3개월 후 헬스장 관장이 진지하게 물었다. “사모님, 보디빌더 한 번 해보실래요?”
‘늙은이 놀리지 말라’며 핀잔을 줬지만 몇 달 뒤엔 아예 대회까지 나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내가 웬만한 40~50대보다 근질이 좋대요. 이런 근육은 처음 봤다나. 관장 말론 대회에 나가면 무조건 입상이래요. 할머니가 무슨 망신을 당하라고 그런 얘길 하느냐고 했는데 어느새 대회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웃음)”
준비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5, 6㎏짜리 덤벨을 들 때마다 ‘아이고 죽겠네’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출전이 확정되자 마음가짐이 변했다.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대회 당시 선보인 자유 포즈도 밤마다 인터넷을 보며 직접 개발했다. 자다가 일어나 15㎝ 높이 하이힐을 신고 포즈 연습을 할 정도였다. 50대 아들, 딸과 20대 손주들에겐 대회 출전이 결정된 이후에야 사실을 털어놨다. 자녀들의 첫 반응은 ‘황당’이었단다. “비키니까지 입고 나간다고 하니 다들 말을 못 잇더라고요. 막상 대회 땐 소리지르며 응원하고 동영상 찍어주느라 바빴지만.(웃음)”
◇모델, 뮤지컬 배우까지 “포기만 마세요”
임씨의 첫 번째 인생은 평범한 주부였다. 그 연령대 여성들 대부분이 그렇듯 자녀들과 손주들 뒷바라지가 전부였다. 다만 35년간 꾸준히 해온 에어로빅이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었다. 임씨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에어로빅이 기본적인 근육을 만들어 준 것 같다”고 했다.
보디빌더 대회 입상 후 임씨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우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최근에는 한 엔터테인먼트사와 계약을 맺고 시니어 모델 및 뮤지컬 배우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건강기구 등 광고 촬영도 잇달아 했다.
아직 정식 뮤지컬 무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연기 수업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젊은 연기자 지망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얻는 에너지가 왕성한 활동의 원동력이다. 그는 “유관순 엄마를 연기할 땐 고문 받는 딸의 모습에 눈물이 펑펑 났다”며 “내일의 목표가 있다는 게 삶을 이렇게 즐겁게 해줄지 몰랐다”고 말했다.
임씨의 왕성한 활동에 자녀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부모의 건강은 자녀의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는 사실을 임씨도 알고 있다. 그는 “애들이 ‘엄마, 건강해서 정말 고마워’란 말을 자주 한다”며 웃었다.
임씨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선 7월 필리핀에서 열리는 보디빌더 대회가 목표다. “77세 한국 보디빌더 임종소를 해외에도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다. 뮤지컬 수업이 없는 날은 여전히 주 3회씩 헬스장에 출석도장을 찍는다.
얼마 전부턴 헬스 트레이너 자격증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필기와 실기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신체 및 운동용어들이 대부분 영어인 탓에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지만 ‘아들의 30년 전 군번까지 외우는 암기력’을 무기 삼아 도전장을 내밀 생각이다. 임씨는 “자격증이 있으면 나와 비슷한 연령대에게 직접 수업도 할 수도 있다”며 “떨어져도 흉 볼 사람 없다는 뻔뻔함을 가지고 일단 도전해 본다”고 말했다.
끝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여든 앞둔 할머니가 보디빌더까지 했잖아요. 못할 게 뭐가 있어요. 미리 포기만 하지 마세요. 나이 그거 별 거 아닙디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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