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참상 피해 응우옌티탄
한국 정부 상대로 첫 소송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로 74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청룡부대가 저지른 ‘퐁니·퐁넛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당시 8세 소녀였던 응우옌티탄씨(60)씨도 어머니와 남동생, 언니 등 가족을 잃었고 자신은 한국군 총격으로 배에 총상을 입어 차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응우옌티탄씨가 퐁니마을 학살사건의 진상을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살아남은 피해자들과 함께 사건 발생 47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하고 한국사회의 책임 있는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3년 뒤 2018년 4월에는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선한 시민평화법정에 원고로 서기도 했다. 비록 모의법정이었지만 김영란 전 대법관 등으로 구성된 재판부는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전쟁범죄 성격을 가지는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한국 정부에 베트남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을 판결했다.
지난해에는 같은 처지의 피해자 103명과 함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하기도 했다. ‘제주 4ㆍ3평화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돼 방한한 길에 청와대 앞을 방문해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당시 103명의 청원인들은 “한국 정부가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했던 불행한 시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여전히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그러한 입장과 태도는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문제에 있어서도 일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응우옌티탄씨도 “저희가 듣고 싶은 말은 ‘사실 인정’입니다. 저는 2015년에도, 2018년에도, 지금도 온몸의 진실을 짜내 증언합니다. 한국 정부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사과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간절히 외쳤지만 한국 정부는 역시 응답하지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한국 정부를 향해 응우옌티탄씨가 마지막으로 꺼낸 카드는 법정 소송.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베트남태스크포스(TF)의 도움을 받아 그는 21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민변이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소장 접수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베트남 현지에 있는 응우옌티탄씨는 참석할 수 없었다. 다만 그는 미리 준비한 영상을 통해 “제 개인의 권리와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베트남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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