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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결정타는 저출산… 한국 흥망도 ‘청년’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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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결정타는 저출산… 한국 흥망도 ‘청년’에 달렸다

입력
2020.04.25 04:30
수정
2020.04.25 07:5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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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와 경제] 

 미혼여성에 독신세 매기며 출산 장려 정책.. 1.2억 인구로 제국 최전성기 

 제국 확장 중단되며 생산 인구 급감… “청년 세대 희망 잃으면 공멸 불가피” 

로마제국의 상징적인 공간인 콜로세움 전경. 로마=최흥수기자
로마제국의 상징적인 공간인 콜로세움 전경. 로마=최흥수기자

<2> 로마멸망에서 배우는 ‘인구 교훈’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 인류 최초의 거대제국으로 평가되는 로마도 건국 과정에서 숱한 난관을 헤치며 일궈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 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장기간 조금씩 붕괴의 단초가 쌓여 왔고, 멸망의 징조들은 일일이 거론조차 힘들 만큼 많았다. 그만큼 멸망을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결국 로마는 망했다. 그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가 ‘인구’다.

 ◇로마제국 인구가 줄어든 두 가지 이유 

사실 로마 멸망의 근거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경제침체다. 전성기 로마는 제로에 가까운 저비용으로 단위노동당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반복된 영토팽창으로 확보된 대규모 노예 인구를 공급했기에 가능한 구조였다. 그런데 이 구조가 약해지고 끊겨 종국엔 불황에 직면한 것이다. 재정 곳간이 바닥난 것도 문제였다. 당시 로마 시민은 대형제국의 지배 세력답게 엄청난 복지 수혜를 선점하고 독점했다.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은 고스란히 재정악화로 이어졌다. 목욕탕과 포도주 등 익히 알려진 퇴폐적인 로마문화가 그 산물이다. 다시 말하면 전성기 때 구축된 ‘영토팽창→노예공급→경제성장→복지강화’의 운영 논리에 균열이 생기면서 작동이 정지된 것이, 로마 멸망의 주요 근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인구라는 변수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나 『로마제국 쇠망사』의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은 인구 감소다. 출산 감소로 현역 인구가 줄어들면서 국가 경제의 기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게 로마 멸망의 직접 원인이란 지적이다.

로마제국의 인구 감소는 두 갈래로 진행된다. 우선 제국 확장이 중단되며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기능했던 노예공급이 줄어들었다. 이것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직결됐다. 당연히 복지재원의 지출에 부담이 발생했고, 유입민족의 증가까지 더해지며 사회 내분이 촉발됐다.

또 다른 인구감소 원인은 로마 본국의 지배그룹에게 광범위하게 퍼진 출산기피 풍조였다. 평민층 이상에서 자식을 적게 낳거나 낳지 않으려는, 요컨대 ‘저출산 신드롬’이 만연했다. 로마제국의 정통성에 부합하는 핵심 계층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것이다. 이 또한 심각한 갈등의 불씨가 됐다.

원래 로마제국은 인구 대국이었다. 황금기로 불리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는 1억2,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에드워드 기번이 “제국위력은 인구에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거대 파워였다. 심지어 아이를 10명 이상 가진 엄마가 흔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서민아파트(집합주택) 인근엔 업무시간인 오전 11시만 되면 쏟아지는 시민들로 거리를 걷기조차 힘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출산장려 정책의 힘이다. 로마제국은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시절에도 적극적으로 출산장려 정책을 폈다. ‘출산저하=국력감소’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출산을 주저하면 패널티를 부가하기도 했다. 로마제국 최초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미혼여성에게 독신세를 매긴 걸로 유명하다. 공직등용 때도 능력이 동일하다면 다자녀 가구에 우선적인 취업기회를 제공했다. 아기 우는 소리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 유인제도를 구축한 것이다. ‘인구=국부’를 제국 확장의 기본 토대로 활용하며 인구대국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덕분에 제국역사는 영구히 계속될 듯했다.


 ◇총인구가 줄어든 유일한 나라, 일본 

하지만 늘 그렇듯 수성이 어려운 법이다. 일정 궤도에 잘 안착해도 이를 유지한다는 건 여러모로 힘들다. 로마제국도 그 한계에 섰다. 그런데 제국의 파워가 약화된 시점과 인구감소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멸망을 앞둔 상황에서 로마인구는 전성기와 비교해 절반 이하인 5,000만명까지 축소됐다. 고도성장을 반복하던 공격적인 제국확장이 멈추고 추가적인 파이 확대가 없는 평화 시절이 지속되자 출산은 급격히 감소했다.

로마제국의 멸망원인으로 ‘납 중독설’을 내세운 역사학자 콜럼 길필런(Colum Gilfillan)의 자료는 더 구체적이다. 그에 따르면 로마제국이었던 트로이(그리스)의 19세 이상 청년 101명 중 기혼자는 35명에 불과했다. 그 중 자녀를 가진 경우는 17명뿐이었다. 설상가상 17명 중 10명은 자녀가 1명이었다. 비록 로마본토가 아닌 점령지역 인구 통계지만, 이를 통해 중심부의 사정도 미루어 짐작된다. 특히 귀족집단 등 중산계층에게서 출산기피 현상이 심했던 걸로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 전염병이 돌고 외부 침입까지 발생하면서 로마제국은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때를 놓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국가유지의 핵심 변수인 인구감소를 방치한 결과는 혹독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인구감소는 사회와 경제유지에 이점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 길게 보면 사회 유지의 근간을 뒤흔드는 악재일 확률이 높다. “출산감소를 방치한 나라 중 부흥한 예가 없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경고는 ‘로마멸망=인구감소’의 우려에 힘을 싣는다.

로마멸망 이후도 사정은 비슷하다. 2020년 현재를 기준으로 해도 ‘인구감소=국력유지’는 찾기 어렵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은 여전히 이민 등 국제전입이 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자국민의 자연감소(출생―사망)를 외국인의 국제증가(전입―전출)가 받쳐주는 구조다. 지금껏 총인구가 줄어든 유일한 국가는 일본뿐이다(2010년).

일본도 출산 회복에 사활을 걸었다. 라인업만으론 해보지 않은 정책이 없다고 할 정도다. 미약하나마 성과도 있다. 2018년 출산율 1.26명으로 인구위기선(1.3명) 아래로 내려간 뒤 2015년 1.45명으로 회복하고 이후 숨고르기 중이다. 1970년대부터 50년에 걸쳐 장기간의 대응 결과로 보인다. 출산율 0.92명(2019년)의 한국과 비하면 상대적으로 나아보기도 하다.

그런데도 총평은 낙제다. 추진동력을 잃고 헤매는 패착을 반복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결국 ‘세계최고의 늙은 국가’라는 오명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한국은 어떨까? 출산장려는 2005년(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부터 시행됐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인구유지선인 2.1명(1983년)을 깬 후 20년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아무리 탁월한 정책이라고 해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효과는 낮다. 이후 펼쳐질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한 비용과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례는 출산제고에 지름길이 없음을 잘 보여준다.

 ◇고빗사위에 선 한국 

물론 만만찮게 어렵고 복잡하다. 어지간한 정책으로 인구감소를 막을 수는 없다. 로마ㆍ일본교훈처럼 실기(失期)하지 않으려면 강력한 구조전환이 급선무다. 사상초유의 0명대 출산 성적은 고강도의 정책 실천이 절실함을 경고하고 있다. 이대로면 연애와 결혼, 출산의 라이프사이클은 줄어든다.

무엇보다 청년을 챙기고 아끼는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기성세대의 약탈적인 착취프레임은 곤란하다. 청춘 그룹을 옥죄는 목줄은 위협적이다. 하물며 해결 타이밍을 놓치도록 기성세대와 시장탐욕의 허들을 높여서야 되겠는가? 가뜩이나 힘든 청년 상대 비즈니스는 착취산업과 같다. 청년 불행을 먹고 사는 사교육은 물론 스펙 축적을 내세운 취업시장도 그렇다. 손에 쥘지 기약조차 아득한 미래 희망을 내세워 부모 등골조차 뽑아내는 시장진화는 멈춰 설 때다. 어루만져‘만’ 주겠다는 힐링(Healing)산업도, 도전하라는 희망(Hope)산업도 그 혐의에서 예외는 아니다.

미래세대가 희망을 잃으면 공멸은 불가피하다. ‘경쟁적 자본주의가 최고의 피임약’이란 말처럼 청년세대의 혼돈과 불안이 낳은 미래의 비관론이야말로 출산 기피의 최대 원인이다. 가령 희망을 되돌려주는 1순위 당면 과제는 안정적인 취업 환경의 마련으로 귀결된다. 정년보장과 연공서열보단 기회 균등과 능력 발휘로 적어도 연령차별적인 고용 관행은 바꿔야 한다. 정책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러니 사회 전체가 패러다임의 수정에 동의하고 참가해야 한다.

이 밖의 과제도 마찬가지다. 지름길이 없듯 하나하나 진정성과 실천성을 갖고 고쳐가야 할 시점이다. 로마멸망의 고루한 전철을 밟을지, 한강의 기적을 재현해 새로운 항로를 열지 한국사회는 고빗사위에 섰다. 미국고령화협회(AGE) 설립자인 폴 휴이트는 “2100년 한국인구는 3분의 1이하로 떨어질 것”이라 했다.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는 “한국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최초국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출산 포기와 청년 증발의 미래는 정해졌다. 남은 건 이제 바꿀지 말 지의 선택뿐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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