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음모론의 세상
과학적 논증 외양 갖춘 엉터리 추론 오류 많지만 대중 선동에는 효과적
김어준 음모론 비판하던 우파들, 사전투표 결과 두고 ‘조작설’ 띄워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이 이론은 그 어떤 유신론보다 더 원시적인 것으로 호메로스의 사회이론과 유사하다. 호메로스는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올림푸스의 신들이 벌이는 공모의 결과라 믿었다. 사회의 음모론은 이 유신론, 즉 신의 변덕과 의지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믿음의 한 변종이다. 그것은 거기서 신을 떼어내고 대신 이렇게 물을 때 성립한다. ‘신이 아니면 누가?’ 신의 자리는 이제 여러 유력자 혹은 유력집단들로 채워진다.” (칼 포퍼)
◇원인 대신에 범인을
음모론이란 소수의 사람 혹은 집단이 은밀한 공모로 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보는 이론이다. 하지만 어디 이 세상이 인간의 뜻대로 움직여지던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 행동은 대개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이렇게 인간의 행동이 의도를 벗어나 종종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기에, 변수를 통제하려고 사회과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포퍼에 따르면 음모론은 사회에 대한 이 과학적 인식을 방해한다.
포퍼가 주창하는 ‘열린사회’는 의견의 자유시장을 통해 이 음모론들을 성공적으로 걸러내곤 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가령 ‘시온의정서’(1903)를 생각해 보자. 이 책에 따르면 세계 곳곳의 유태인들이 각국에서 권력을 장악해 세계 단일정부를 수립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한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이 음모론이 나치독일에서는 사회과학을 대체했다. 그 결과는 다 알다시피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사태였다.
우익만이 아니다. 당시엔 좌익들도 즐겨 음모론을 유포하곤 했다. 대중선동에는 복잡한 사회이론보다 음모론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칼 포퍼는 이들을 ‘속류 마르크주의자’라 부르며, 정작 그들의 원조 칼 마르크스가 최초의 음모론 비판자였음을 상기시킨다. 마르크스는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숨은 조종자들을 ‘적발’하는 게 아니라, 그 사회를 움직이는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과학에서 이야기로
‘음모’(conspiracy)라는 말에는 ‘함께(con)+숨쉰다(spirare)’는 뜻이 담겨 있다. 음모란 소수의 사람들이 숨 닿을 거리에서 끼리끼리 속닥인다는 뜻이다. 사회란 개인들, 계층, 계급들의 욕망이 필연적 법칙이나 우연적 계기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합력(合力)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고대에는 아직 사회과학이 없었기에, 그 시절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현상을 신화로, 즉 신들이 끼리끼리 속닥거려 세상을 움직인다는 ‘이야기’로 설명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음모론은 인간의 의식을 과학에서 이야기의 시대로 되돌려 보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퇴행이 아니다. 현대의 음모론은 ‘과학 이후’의 이야기라, 고대의 신화와 달리 나름 합리적 추론과 과학적 논증의 ‘외양’을 갖추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이들에게 그것들은 그저 사이비 논증과 엉터리 추론에 불과하나, 거기에 빠진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그 오류를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즉, 현실에서는 가끔 ‘음모’가 실제로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정부가 세계적 감시망을 갖추고 전 세계인의 통신을 감청하고 있다’는 얘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음모론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스노든의 폭로로 이 음모론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이 어디까지가 합리적 추론이고 어디부터 음모론적 상상인지 가르는 기준이 늘 명확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음모론
우리나라에서 음모론의 대명사는 김어준이다. 그의 음모론은 어느 감독의 손에서 영화(‘그날 바다’)로 빚어졌다. 누군가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얘기다. 최근 발표된 2탄(‘유령선’에서는 상상력이 더 대담해진 모양이다. 세월호 항적을 속이려 무려 1,000여척의 선박데이터를 조작했단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앞서 이들이 대답해야 할 상식적 질문이 있다. ‘대체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켜 얻을 이익이 뭔가?’
2012년 대선 후에도 그는 음모론을 펼친 바 있다. 분리기에서 나온 미분류표 중 박근혜 표가 문재인 표보다 1.5배(‘K값’)가 나왔는데, 이것이 정권에서 개표를 조작했다는 증거라는 것. 역시 영화(‘더 플랜’)로 만들어진 이 황당한 음모론은 2017년 대선결과를 통해 바로 반박된다. 이번엔 미분리표 중 문재인 후보의 표가 홍준표의 1.6배나 나온 것이다. 이렇게 가공할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이 소재로는 영화 만들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그 일을 반대편 사람들이 하고 있다. 사전투표에서 균일하게 여당후보가 13% 내외로 앞서는데, 결과가 그렇게 나올 확률은 수조분의 1이라나? 사전투표야 원래 젊은층, 본투표는 노년층이 많이 참여하는 법. 그 현상이 전국적으로 골고루 나타났다고 보면 될 것을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지지층을 향해 ‘사전투표는 조작가능성이 있으니 삼가라’고 말했던 것이 지금 음모론을 펼치는 자신들 아니었던가.
◇과학 이후의 이야기
황당한 것은 이 민중창작을 종종 전문가들이 거든다는 것이다. 가령 2012년 대선의 개표조작 음모론은 재미통계학자 김재광 교수의 지원을 받았고, 이번 총선의 개표조작 음모론은 역시 재미통계학자인 김좌진 교수의 지지를 받았다. 2011년 선관위 홈페이지 접속장애와 관련해 선관위 음모론을 제시한 것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기창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부추긴 것은 영상의학의 “세계적 전문가”라는 양승오 박사였다.
음모론은 ‘과학 이후’의 이야기라, 이처럼 과학적(?) 논증의 지원을 받곤 한다. 전문가들의 개입은 사실과 상상이 뒤섞인 이 허구에 과학의 외관을 입힌다. 그 전문가들의 권위에 기대어 시민들은 자기가 합리적으로 추론한다는 착각에 빠진 채 미신을 믿게 된다. 음모론에 동원될 때 과학은 신화의 도구로 전락한다. 위험한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 극단적 사례를 안다. 나치독일에서 과학은 아리안 인종주의 신화를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되곤 했다.
문제는 음모론이 공론의 장에까지 침투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듣자 하니 개표조작 음모론이 제1야당의 의원총회에 의제로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집권여당의 인사들 역시 온통 음모론적 사유에 갇혀 있는 듯하다. 검찰총장이 측근들을 데리고 “쿠데타”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음모론적 상상은 최근 ‘검찰총장이 유시민을 잡기 위해 종편기자를 통해 감옥에 있는 이철과 검은 거래를 시도했다’는 시나리오로까지 발전했다.
◇음모론적 상상의 특징들
음모론은 일견 합리적 추론의 외양을 띠나, 그것과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음모론은 대개 비경제적이다. 그리하여 설명해주는 것보다 설명해야 할 것을 더 많이 남긴다. 개표조작 음모론은 득표율에 보이는 이상현상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 가정을 받아들이면 설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진다. 투표함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꿔 치기 했으며, 거기 동원된 수많은 이들의 입을 어떻게 그토록 완벽히 틀어막을 수 있었을까.
둘째, 음모론은 편집증적이어서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인 중에서 특정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양승오 박사는 MRI 사진 하나에 꽂혀서 박주신의 병역비리를 확신했다. 민주당 인사의 자제가 이명박 정권의 병무청으로부터 특혜를 받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공개검증을 수행한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들 전원을 매수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오직 사진에만 꽂힌 머리에는 이런 상식적인 물음들이 떠오를 자리가 없다.
셋째, 음모론은 망상적이다. 즉 음모의 효과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 보라. 십알단의 댓글 공작이 없었다고 2012년 대선결과가 달라졌을까. 드루킹 일당이 산채에서 매크로를 돌리지 않았다면 2017년 대선결과가 달라졌겠는가. 또, 댓글 조작을 한 중국인들이 실제로 있다 치자. 유입량 1%도 안 되는 그들이 그 짓을 안 한다고 이번 총선의 결과가 달라지겠는가. 이 세상은 소수의 몽상가들이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하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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