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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으로읽는책]‘영원한 기록’을 꿈꾸며 1000년을 건너온 단 한 권

입력
2020.04.24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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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찬란한 문양과 색감을 뽐내는 이 그림의 출처는 유명 미술관도, 박물관도 아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왕립도서관 깊숙한 곳에 보관돼 있는 ‘코펜하겐 시편’ 중 한 페이지다. 12세기 덴마크 왕궁에서 제작한 이 책은 구약성서의 시편을 라틴어로 번역해놓은 것인데 심오한 내용보다는 황홀한 삽화에 우선 압도된다. 정교한 그림과 화려한 색감도 놀랍지만 황금이 채색된 별 안에 진짜 보석까지 박아놨다고 하니 제대로 눈 호강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인 중세 시대, 모든 책은 필경사와 삽화가가 직접 쓰고 그려 완성했다. 그렇게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단 한 권의 책은 왕실과 귀족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사치품이자, 당대의 문화와 지식이 집약된 독립된 예술작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책’(21세기북스)은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제작된 위대한 필사본 12권을 찬란하게 펼쳐 보인다. 25년 간 소더비에서 필사본 경매를 담당한 저자가 세계 유명 도서관의 희귀본 서고를 돌아다니며 중세 필사본을 직접 펼쳐본 결과물이다.

이 진귀한 책들은 실제로 영접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쩌다 공개되더라도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한 페이지일 뿐. 저자가 “교황이나 미국 대통령 만나는 것보다 어렵다”고 공언한 건 헛말이 아니다. 뭐든지 쉽게 썼다 지우는 디지털 시대, ‘영원한 기록’을 꿈꾸며 글자 한 자, 붓질 한 번에도 수천 번 고민했을 필사본 장인들의 숨결과 채취가 1,000년의 세월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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