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금지 행위…검찰에 수사 요청
국가정보원이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을 사찰하고 자체 예산으로 만든 동영상을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배포한 정황이 드러났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ㆍ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 당시 국정원 현장 직원 5명에 대해 검찰 수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특조위 조사에서 국정원이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하고 여론조작을 한 정황이 드러난 데 따른 것이다.
특조위에 따르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단식 투쟁을 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서울동부시립병원에 입원하자 국정원 직원이 병원장 등을 만나 김씨의 건강 상태와 각종 신상을 조사해 상부에 보고했다. 박병우 특조위 세월호진상규명국장은 “신상 보고서가 올라온 뒤 ‘이혼 뒤 외면’, ‘아빠의 자격’ 등 김씨 신상에 관한 내용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에서 다뤄졌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7일부터 같은 해 11월 5일까지 세월호 관련 동향 보고서를 최소 215건 이상 작성했다. 특히 이 중 유가족 사찰 정황이 담긴 보고서는 48건에 달했다. 이 보고서엔 ‘진도실내체육관에 강경 성향 희생자 가족 1명이 내려와 실종자 가족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팽목항에 내려와 있는 온건 성향 희생자 가족 1명’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외에도 보고서엔 국정원 직원들이 직접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정부의 부실 대응에 따른 부정 여론이 확산하는 걸 막기 위해 국정원이 적극 여론 조성에 나선 정황도 드러났다. 국정원이 자체 예산을 들여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주제의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 등을 통해 배포한 게 대표적이다. 특조위 비상임위원인 황필규 변호사는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엔 일간베스트, 독립신문 등을 ‘건전 사이트’로 표현하며 영상을 확산할 계획 또는 확산 중이라고 하거나, 게재 1주일 만에 조회수 1만회가 넘었으니 건전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고 전했다. 특조위는 당시 국정원의 이런 행위 자체가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금지 행위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특조위가 처음으로 국정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청한 배경이다.
그간 세월호 참사 당시 국정원의 불법 활동을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으나 검찰 수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앞서 2017년 출범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국정원의 불법사찰, 정치개입, 여론조작 사건을 조사했지만 세월호 인물 사찰 정황 등에 대해선 발견된 게 없다고 결론 지었다. 황필규 변호사는 “오늘 발표 내용은 일부 자료에 의거해 이뤄진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려면 국정원 문서가 하나도 빠짐없이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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