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피하려 태양절 참배 불참, 갈마지구 완공 못 지켜 대책 부심
‘베이징發 신변이상설’ 中에 강력항의… 中 “北에 진단키트 보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모임과 행사를 금지한 내부 결정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은 북한의 최대 명절인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로 김 위원장이 2012년 집권 이후 태양절 참배를 건너뛴 건 처음이어서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김 위원장은 태양절에 맞춰 공언한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완공이 늦어지자 평양을 떠나 현지지도에 나섰지만, 아직 성과가 마땅치 않아 공개활동을 꺼리며 민심 수습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와중에 중국 베이징을 중심으로 각종 억측이 끊이지 않자 북한은 중국에 강력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 소식통은 27일 “지난 1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3명 이상 모이지 말라’는 결정이 내려졌다”면서 “김 위원장이 15일 참배에 나설 경우 대규모 인원이 몰려 감염 위험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12일 노동신문은 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세계적 대유행 전염병에 대처해 인민의 생명ㆍ안전을 보호하고 국가 대책을 더 철저히 세우기 위한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강조하면서도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하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제기구가 북한에 의료장비를 지원했고 중국도 진단키트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금껏 확진자 ‘0’을 주장하지만 실제 상황은 다를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 소식통은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이 방역을 지원한 것으로 안다”며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로 의료진이 방북했다는 주장과는 별개”라고 말했다. 겅 대변인도 “진단키트는 의료진과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전날 “코로나19로 북한에서 최소 267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대신 14일 원산으로 향했다. 김일성 주석에게 봉헌한다며 15일로 공언했던 갈마지구 완공이 대북제재로 불투명해진데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관광객 입국도 불가능해지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당초 지난해 태양절에 맞추려던 관광특구 완공은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두 차례나 미뤄졌다. 이 소식통은 “올해 태양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원산 갈마지구였는데 상당한 재원을 쏟아 붓고도 내세울 게 없는 상황”이라며 “김 위원장이 현지에서 대책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강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 사이 김 위원장의 거취를 둘러싼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됐다. 특히 ‘중국이 23일 의료진을 북한에 파견했다’는 외신 보도 이후 중국발(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우리 정보당국은 “23일 북한과 중국을 오간 비행기의 항적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의료진을 이끌고 방북한 것으로 거론된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도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모습이 북한 매체에서 사라진 후에도 외국 정상들에게 축전을 보냈다는 동정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날도 갈마지구 건설 근로자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은 지난 19일 외무성 담화에서 김 위원장의 편지를 받았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모두가 김 위원장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사안들”이라며 “그가 중태라면 의료시설이 빈약한 원산이 아니라 봉화진료소가 있는 평양으로 곧바로 옮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북중 접경지역이나 평양 시내에서 특이동향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최근 이례적으로 중국에 불만과 항의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 관련 보도에 대해 중국 정부가 “출처를 모르겠다”며 모호하게 대응하면서 소문이 부풀려진 만큼 확실하게 선을 그으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14년에도 40여일간 종적을 감췄고, 올 초에도 북한 매체에서 20여일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던 전례가 있다. 반면 이달 12일 이후로는 아직 보름에 불과하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서둘러 모습을 드러낸다면 외부의 의혹 제기에 굴복하는 모양새라는 볼멘소리가 북한 내부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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