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준공식이 열린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을 보란 듯이 활보하며 자신을 둘러싼 ‘사망설’을 불식했다. 이로써 김 위원장이 측근들과 함께 평양을 떠나 원산 지역에 머물러 왔다는 ‘원산 체류설’이 힘을 받는 분위기다. 일부 매체들은 위성사진을 근거로 이 같은 설에 무게를 실어 왔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는 지난달 25일 원산의 한 기차역에서 전용 열차로 추정되는 열차가 포착됐다며 15일과 21일, 23일 촬영된 위성사진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사진들 속엔 김 위원장의 원산 체류 또는 방문 가능성을 뒷받침할 만한 작은 변화가 숨어 있었다. 기차역 앞 김 위원장의 전용 승마장에서 흙을 고른 흔적이 나타난 것이다.
38노스는 지난달 15일 촬영된 사진에선 기차역구내가 비어 있었지만 21일과 23일 열차가 정차해 있는 모습이 찍혔고, 이 열차가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만으로 김 위원장의 행방이나 건강 상태를 입증할 수 없으나 그가 최근 동해안 지역에서 머물고 있다는 설에 무게를 실을 수 있다고도 전했다. 이 열차는 29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포착됐다.
해당 사진들을 다시 보면, 지난달 15일 기차역 앞 승마장의 3개 마장 바닥이 동일한 색깔인 데 비해 21일엔 사각형 마장의 중앙 부분만 진한 색으로 바뀌어 있다. 최적의 조건에서 누군가 승마를 즐길 수 있게 바닥 흙 고르기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마장 흙을 골라주면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바닥이 폭신해져서 말과 기수가 받는 충격이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이후 비상 활주로를 없애고 조성한 이 승마장은 김 위원장의 취미와 관련이 깊다. 김 위원장은 스위스 유학 시절부터 승마를 취미로 즐겨 온 것으로 유명하다. 만약 이날 기차역구내에 정차한 열차가 김 위원장의 전용 열차라면, 전용 승마장의 흙 고르기 또한 김 위원장의 취미 생활을 위한 준비작업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위성사진에 나타난 이 같은 변화만으로 김 위원장의 체류를 단정할 수는 없다.
위성사진은 북한 내 특정 장소의 환경적 변화 또는 각종 장비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어 정보로서 가치가 상당하다. 하지만 극비리에 이동하는 최고 지도자의 경우 위성사진만으로 그 행방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조차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정보와 과거의 이력, 드러난 정황 등을 총동원해 위성사진의 의미를 해석하고 추정할 뿐이다.
기차역에 세워진 열차가 김 위원장의 전용 열차가 맞다 하더라도 김 위원장의 체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선 더 높은 차원의 정보가 필요하다. 위성사진을 의식한 북한이 오히려 이를 이용해 기만전술을 펼 가능성도 있으니 여러 변수를 염두에 둬야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서도 안 되는 게 위성사진이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