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부자의 세계’
얼마 전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가 급성장하는 한국 시장을 주시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TV에서나 보던 부자들이 우리 주위에도 많아진 것 같다. 하지만 세계적 갑부들의 취미는 사이즈부터 남다르다. 슈퍼카 수집이 취미인 축구선수들이 모인 팀을 아예 사버린다.
2003년 4월 23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ㆍ이하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ㆍ이하 ‘레알’)가 맞붙었다. 이날 레알의 호나우두는 슛 3개로 해트트릭을 작성했다. 대회 탈락이 확정됐음에도 맨유 팬들은 상대팀 공격수 호나우두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현장에 있던 러시아 갑부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감동의 바다에 빠졌다.
그런 아브라모비치는 호나우두 유니폼을 샀을까? 아니다. 런던의 인기팀 첼시를 사버렸다. 스타 플레이어들을 쓸어 담은 첼시는 단단했던 맨유-아스널 2강 체제를 깨트렸다. 이때 맨유 팬들은 첼시를 “첼스키!”라며 조롱했다. 정확히 2년 뒤, 맨유는 ‘사커’의 나라에서 온 스포츠 갑부 말콤 글레이저(미국)의 손에 넘어갔다. 이때부터 외국 자본 쓰나미가 영국 축구를 쓸어버렸다.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0개 클럽 중 영국인이 지분 100%를 소유한 곳은 네 팀에 불과하다.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외국인 구단주는 역시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ㆍ이하 맨시티)를 소유한 아랍에미리트(UAE) 왕자 만수르다. 2008년 맨시티를 1억5,000만파운드(약 2,277억원)에 인수했다. 그리고 다음 날 레알의 브라질 스타 호비뉴를 3,250만파운드(494억원)에 쇼핑했다. 영국 축구 이적료 신기록이었다. 이후 만수르가 2조원을 뿌린 덕분에 맨시티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5회 등 영국 최강으로 떠올랐다. 만수르는 공개된 재산만 약 27조원에 달하는 슈퍼리치다. 맨시티뿐 아니라 미국, 스페인, 호주, 인도, 일본에서도 ‘축구 깃발’을 꽂았다. 2018년 UAE 특사 자격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던 칼둔 알무바라크가 만수르의 오른팔로서 맨시티를 진두 지휘하고 있다.
세상은 넓은 만큼 만수르보다 돈이 더 많은 갑부도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EPL 구단주 놀이’에 뛰어들었다. 영화 ‘골(Goal)’의 배경이었던 인기팀 뉴캐슬을 3억파운드(4,551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왕위 승계 1순위로서 현재 사우디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그가 속한 사우디 일가의 총재산은 무려 1조3,000억파운드(1,972조원)에 달한다. 이슬람 세계 큰집의 장자답게 빈 살만 왕자는 맨유를 사려고 했다가 소유주 글레이저 가문과 협상이 틀어지면서 뉴캐슬로 선회했다. 국제 인권 단체 엠네스티의 인수 불허 요청에도 불구하고 뉴캐슬 팬들은 벌써 오일머니의 달콤한 꿈에 부풀었다. 사우디 자본의 투자는 2013년 압둘라 빈 무사에드 왕자의 셰필드 유나이티드 인수 후 두 번째다.
최근 들어선 ‘차이나 머니’도 낯설지 않다. 2016년 중국의 푸싱그룹이 잉글랜드 중부 명문 울버햄프턴(당시 2부)을 인수했다.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푸싱 창업자 궈광창 회장은 재산 65억달러(7조9,261억원)로 중국 갑부 50위에 올라 있다. 푸싱의 공격적 투자 덕분에 울버햄프턴은 2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고, 올 시즌 유럽 대회(UEFA챔피언스리그ㆍ유로파리그) 출전권을 노릴 정도로 전력이 급상승했다.
그간 중국 갑부의 주된 투자 시장은 이탈리아 세리에A였다. 2016년 중국 유통업계 최강자 쑤닝그룹이 명문 인터밀란을 인수했다. 중국 부자 15위인 쑤닝 창업자 장지둥 회장의 재산은 122억달러(14조8,760억원)다. 클럽 인수 2년 뒤 장지둥 회장은 27세 아들 장강양(영어명 스티븐 장)을 회장 자리에 앉혔다. 단, 중국 갑부들은 모기업의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 개념으로 유럽 구단을 인수하고 있어 중동 왕족들의 ‘돈 자랑’ 접근법과 차이가 있다.
홍재민 전 <포포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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