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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영토분쟁] <68> 아파르트헤이트가 만든 한 맺힌 땅 ‘카응과네’

입력
2020.05.02 07: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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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응과네 지역
카응과네 지역

대한민국 면적의 약 6분의 1(173만㏊)에 불과한 작은 내륙국으로 거대한 산악 풍경이 아름다워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리는 에스와티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둘러싸여 있다. 당초 스와질란드이던 국호를 영국에서 독립한지 50주년이 된 2018년 4월 에스와티니로 개칭했다.

당시 정부가 국호 변경의 명분으로 내세운 건 ‘식민 잔재 청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라는 식민지 시절 시작된 인종 분리 정책으로 국토 일부를 남아공에 빼앗긴 아픔이 크다. 바로 남아공 백인정권 시절의 극단적인 유색인종 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의 대표적 악행 중 하나로 꼽히는 ‘반투스탄’(흑인 격리 시설) 때문이다.

현재 남아공 음푸말랑가주(州)에 속하는 ‘카응과네’ 지역은 본래 스와질란드 일대에 거주하는 반투어계 스와지족 거주지로 국경 서쪽과 북족을 따라 서로 떨어진 두 개 구역으로 이뤄져 있다. 문제는 스와질란드가 1907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시작됐다. 옆 나라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은 1814년부터 영국의 지배 하에 있었고, 아파르트헤이트는 1948년 법률로 공식화되기 전 1910년대부터 횡행했다.

반투자치법은 그 중 하나로 1951년 입법화됐다. 반투스탄이라 불리는 불모지에 흑인들을 집단 이주시켜 각종 권리와 혜택을 박탈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골자다. 카응과네는 10개의 반투스탄 가운데 한 곳이었다. 스와질란드는 1968년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당시에 카응과네는 남아공 내 반투스탄으로 남았다.

남아공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해 1976년 반투스탄을 독립시키겠다는 뜻을 천명했고, 실제로 그 해 1월 반투스탄 중 하나인 트란스케이가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영합하는 괴뢰정권임을 들어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남아공은 1982년 반투스탄 중 카응과네를 꼭 집어 스와질란드에 할양하고자 했다. 실상은 모잠비크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 게릴라의 침입에 대한 대응책으로 카응과네를 완충지대화 하려는 심산이었다. 남아공은 카응과네 자치법정의 반대로 이 계획이 무산되자 스와지족에 대해 가혹한 보복을 자행했다.

카응과네를 비롯한 반투스탄 10곳에 거주하던 흑인들은 1994년 남아공에 넬슨 만델라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야 겨우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만델라 당시 대통령은 그 해에 반투스탄을 철폐하고 남아공 내 행정구역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스와질란드는 여전히 “카응과네는 스와지족 영토의 일부로서 식민지 시대에 빼앗긴 땅”이라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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