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을 높이려면 아침식사로 죽을 먹지 말라.”
중국인들의 건강을 염려한 감염병 전문가의 조언이 엉뚱하게도 애국 논란으로 번졌다. 전통을 무시한 서양 숭배라는 불만이 쏟아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시달리면서 예민해진 국민 정서가 의학적 권고를 정치 쟁점으로 둔갑시킨 셈이다.
장원홍(張文宏) 푸단대 화산병원 감염내과 주임은 지난달 15일 코로나19 예방 강좌에서 “아이가 살이 쪘든 말랐든 반드시 고영양ㆍ고단백 음식을 먹여야 한다”면서 “아침식사로 우유와 달걀이 좋고 죽은 먹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러스에 맞선 항체는 모두 단백질로 구성돼 있는데 흰 죽은 그냥 탄수화물”이라며 “생선찌개를 먹을 때도 그릇 바닥에 남아있는 부스러기까지 깨끗이 비워야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죽이 일반 가정에서 아침에 즐겨먹는 간편식이다 보니 그의 발언은 서구를 숭상하고 중국인들의 오랜 식습관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특히 장 주임이 중국 최고의 호흡기질환 권위자인 중난산(鐘南山) 공정원 원사와 더불어 코로나19 국면에서 대중매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전문가여서 파장이 더 컸다.
비판론자들은 “선조들은 기원전 2,200년 오제시대 때부터 죽을 먹었다”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죽을 외면하는 건 중국인들의 애국심에 대한 도전”이라고 날을 세웠다. 일부는 ‘죽을 먹으면 맛은 좋고 질병은 줄어 백성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사료의 구절까지 인용했다. 장 주임의 발언 이후 2주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 조회수가 1억3,000만회를 넘어설 정도로 반응이 격렬했다.
하지만 의학계에서 장 주임을 두둔하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여론이 다시 갈렸다. 우한의 65세 이상 환자 182명을 대상으로 한 중일우호병원 연구진의 조사 결과 52.7%는 영양섭취가 불량했고 27.5%는 영양부족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영양상태와 코로나19 감염 사이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수록 죽을 선호하지만 오히려 혈당수치를 급속히 높인다”는 우려도 나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중국 인구 14억명 중 3억명은 영양 불균형 상태”라며 이를 죽과 국수 위주의 음식 섭취로 인해 단백질과 야채ㆍ과일이 외면 받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죽을 먹어야 애국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논리에서 벗어나자”는 자성론이 힘을 얻고 있다.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에 민족의 자존심이나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소모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국 재경망이 7,959명을 상대로 아침식사 메뉴를 물었더니 ‘죽’(1,491명ㆍ18.7%)이 ‘빵과 우유’(2,287명ㆍ28.7%) 다음으로 많았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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