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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창고, 안전대책 눈감고 6번 경고 귀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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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창고, 안전대책 눈감고 6번 경고 귀닫았다

입력
2020.04.30 17:54
수정
2020.04.30 23: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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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후 정부 특별대책 내놨지만 안 지켜 

 안전공단 “우레탄폼·용접 중 폭발 위험” 등 경고 현장서 무시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로 38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다음날인 30일 오전 합동감식반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이천=이한호 기자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로 38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다음날인 30일 오전 합동감식반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이천=이한호 기자

황금연휴를 앞둔 29일 38명이 희생된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 역시 ‘인재(人災)’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47명 사망) 직후 정부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단장으로 한 화재안전대책특별TF팀을 구성해 근본적 차원까지 개선하는 화재안전특별대책을 내놓았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30일 이천시 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시공사인 ㈜건우 측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6차례나 화재 등 사고위험을 경고했지만 이를 현장에 반영하지 않았다.

공단측은 회사가 제출한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확인한 결과 사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서류심사 2차례, 현장실사 4차례에 걸쳐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는 공사 과정에서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위험물질이나 유해요인을 확인해 작성하는 문서다. 2008년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이후 도입된 후속대책이다.

특히 공단은 지난해 4월 제출된 유해위험방지계획에 대해서 ‘우레탄폼ㆍ용접 작업에서의 화재폭발 위험에 대해 주의’하라고 3차례 경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단열재로 쓰이는 우레탄폼은 이번 화재 원인으로 지목되는 물질이다.

공단 역시 현장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음에도 매번 업체의 위험방지계획에 대해 ‘조건부 적정’ 판정을 내렸다. ‘조건부 적정’ 판정이 내려지면 그 내용과 보완사항이 지방고용노동관서에 통지될 뿐 개선명령 등 별도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

특히 우레탄 작업과 용접작업을 동시에 한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에 가깝다고 노동계는 지적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공단 지침 등에 따르면 우레탄을 시공할 때는 휘발성 물질이 다수 발생해 용접작업과 반드시 분리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또 용접작업 전에는 충분히 환기하고 작업 중에는 환기시설 가동, 소화기 비치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 중인 가운데 화재감시자가 없었다는 현장 증언도 나왔다. 정부는 지난해 화재안전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용접작업 시 1만5,000㎡ 이상 사업장에 대해서만 의무화됐던 화재감시자를 모든 작업장에 배치하도록 의무화 했었다.

샌드위치 패널의 충전제로 화재에 취약한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이 사용되는 것도 화재가 났다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빌미가 됐다.

이천 코리아냉동창고와 서이천 물류창고 화재 이후 4,000㎡ 이상의 창고는 내부 마감재를 난연성 이상 재료로 쓰도록 했지만 샌드위치패널에는 여전히 스티로폼 등이 쓰이고 있다.

그래픽=박구원기자
그래픽=박구원기자

김영만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불연재나 난연재가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우레탄이나 스티로폼을 여전히 단열재로 쓰고 있다”며 “불에 약하고 독성물질을 다량 배출하는 샌드위치패널 사용을 지금이라도 금지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대형 화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면 사고를 낸 사업자를 엄중히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0명이 숨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당시 코리아냉장은 2,000만원의 벌금을 내는 데 그쳤다.

김철홍 인천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대형 사고를 내도 형사처벌은 거의 받지 않고 최저 수준의 벌금만 내면 되니 기업이 예방적 투자를 안 한다”며 “현행법을 엄격히 적용하거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우리 정부 들어 화재안전대책을 강화했는데 왜 현장에선 작동되지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정부는 2008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밀양 화재 이후 화재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특별대책을 발표했었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건축주인 한익스프레스 서울 서초구 본사와 건우의 충남 천안시 본사를 압수수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핵심 관계자 15명에 대해서는 긴급 출국금지 조치도 했다. 경찰은 조만간 이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이천=이범구 기자 ebk@hankookilbo.com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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