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클럽 맨] <8> 포항 스틸러스 장비사 이상열씨
#K리그는 팬들과 접점인 선수와 지도자는 물론, 구단이 운영되는 데 없어선 안 될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아래 성장하고 있습니다. 구성원 가운데도 한 자리에 오랜 시간 머물며 K리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원 클럽 맨’들의 삶과 보람을 전합니다.
“보따리 싸는 게 일이에요.”
20년째 포항 스틸러스의 장비사로 일하고 있는 이상열(59)씨는 그의 직업을 이렇게 표현했다. ‘장비사’라는 직함 그대로 축구 훈련과 경기에 사용되는 장비를 모두 챙겨야 한다. 원정 경기나 전지 훈련 등을 떠날 때면 짐의 부피는 어마어마하다. 준비한 유니폼, 축구화, 공, 훈련도구 등을 제자리에 배치하고, 그라운드에 선을 긋는 등 훈련이나 경기가 시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게 그의 임무다.
지금도 생경한 직업이지만, 20년 전엔 더했다. 이씨도 처음엔 무슨 일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는 우연히 이 일과 인연을 맺게 된 건 1997년 외환위기 여파 때문이다. 그는 “다니던 맥주회사를 관두고 백화주막이라는 프랜차이즈 주점을 운영했는데 외환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친분이 있던 유동관(57) 당시 포항 코치가 장비사 자리를 제안했다. 전임 장비사가 갑자기 관둬 자리가 생긴 것. 이 장비사는 “내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직업을 소개시켜줬다”며 “구원의 손길이었다”고 했다.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다. 전임자가 급작스레 관뒀기에 인수인계를 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는 “이 직업이 무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던 때”라며 “맨땅에 헤딩하듯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일을 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이곳 저곳으로 짐들을 이고 지고 다니다 보니 벌써 정년을 코앞에 두게 됐다.
지금은 혼자서 수많은 장비를 능숙하게 관리하고 경기를 준비하지만, 늘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실수하면 경기 전체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 그가 선수의 유니폼을 빼먹기라도 한다면, 그 선수는 경기에 아예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장비사는 “내가 잘못하면 게임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다”며 “그래도 아직까지 한 번도 실수한 적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세월이 흐르며 새로운 장비 덕에 그의 일도 조금씩 달라졌다. 가장 많이 변한 건 운동장이다. 훈련장 마킹 작업도 담당한다는 이 장비사는 “겨울이면 하얗게 변하는 조선잔디에서 4계절 푸른 양잔디로 변하면서 마킹 작업이 수월해졌다”며 “또 롤러 붓으로 일일이 그리다가 마킹 기계가 들어오면서도 많이 변했다”고 했다. 그는 “훈련장은 경기장보다 상대적으로 울퉁불퉁해 똑바로 선을 긋기가 쉽지 않다”며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 빠르고 바르게 선을 긋지만, 조금이라도 비뚤어지면 기분이 안 좋다”고 말했다.
20년간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포항의 자부심이다. 이 장비사는 “포항이 강등권에도 가보고 위기가 찾아올 때도 있었지만, 헤쳐가는 모습은 늘 같았다”며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하고, 견뎌 나가는 모습이 ‘역시 명문팀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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