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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은 여러 면에서 화제였다. 윤성현 감독이 ‘파수꾼’(2011)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인 데다 청춘 스타 이제훈 박정민 안재홍 최우식 캐스팅으로 눈길을 끌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국내 상업영화 최초로 넷플릭스에 직행하는 과정에서 법정 다툼이 오가 잡음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정작 영화가 공개되자 ‘시간을 사냥 당했다’는 등 악평이 적지 않다. 마냥 비난 받을 영화는 아니지만, 윤 감독 후속작으로 실망스럽긴 하다.
영화는 경제 불황으로 붕괴된 근미래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거리엔 낙서가 가득하고, 곳곳이 시위 현장이다. 불 꺼진 건물들로 채워진 도시는 스산하다. 텅 빈 도로엔 절망이 팽배하다. 한국 영화에선 보기 드물었던 디스토피아의 풍경이다.
‘사냥의 시간’은 시각적인 면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2006)을 닮았다. 윤 감독은 “‘칠드런 오브 맨’을 아주 좋아하고 ‘사냥의 시간’에 많이 참조했다”고 말했다. ‘칠드런 오브 맨’은 세계 대부분 지역이 무정부 상태에 빠진 2027년 영국이 배경이다. 세계 각국 난민들이 영국으로 몰리고, 런던은 아수라장이다. 인류의 몰락을 재촉하는 건 미래의 상실이다. 전 세계 여성이 집단적 불임에 걸린다는, 기이한 설정 하나만으로도 영화는 상상을 자극한다. ‘아기’라는 희망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고난이 서스펜스를 빚는다.
‘사냥의 시간’은 가까운 미래 경제가 무너진 한국사회로 디스토피아의 시공간을 좁힌다. 희망 잃은 네 청년이 달러를 강탈해 ‘헬조선’을 탈출하려 하는 모습은 2020년 현실에 맞닿아있다. 한국 청년들의 고뇌를 다룬다는 의미는 있으나 이야기는 출발부터 빈약해진다.
파괴된 도시를 질주하는 ‘사냥의 시간’ 속 청년들의 불온한 모습은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1988)를 떠올리게 한다. ‘아키라’는 일본 간토 지방에 신형 핵폭탄이 떨어지고 38년이 지난 2030년 네오 도쿄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 정부는 열도의 재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올림픽을 유치하나 현실은 여전히 잿빛이다.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청소년 폭주족은 삭막한 거리를 질주한다. ‘사냥의 시간’ 속 방황하는 청춘들과 데칼코마니 같다. 하지만 ‘아키라’는 한발 더 나아간다. 돌연변이 초능력자들까지 다루며 과학에 대한 맹신을 경고한다. ‘칠드런 오브 맨’처럼 생각거리가 많아지는 디스토피아 영화다.
‘사냥의 시간’에서 청년들을 쫓는 한(박해수)은 관객들이 가장 수긍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사이코패스 킬러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를 닮았으나 결이 다르다. 고위층 비리를 감추려 청년들 ‘사냥’에 나선 한은 어느 순간 본래의 목적을 잃는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찾기보다 사냥을 더 즐긴다. 시거가 목표에 충실한 냉혈한이라면 한은 고약한 유희적 인간이다. 청년세대를 착취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메타포라고 할까. 쫓고 쫓기는 장면을 반복하며 장르적 쾌감을 만들고 싶었던 감독의 과욕이 만든 인물일까.
서사가 없으면 근사한 비주얼과 멋진 연기 앙상블도 공허하다. ‘사냥의 시간’이 남긴 교훈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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