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소’라는 이름 쓰며 파양비 수백만원씩 받기도
파양동물 돈 받고 되팔아도 관리할 법적 근거 없어
#1. 경기도에 사는 A씨는 지난 3월 수년간 함께한 고양이를 피치 못할 사정으로 B업체에 파양했다. A씨는 B업체가 ‘안락사 없는 보호소’라고 광고 하는 것을 보고 선택했다. 이 업체는 새 가족을 찾는데 드는 금액이 30~40만원 선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막상 매장을 방문하니 입양 갈 때까지 각종 질환 치료와 의료 서비스 명목으로 200만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고양이를 더 잘 돌봐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해당 업체가 동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들은데다 고양이를 파양한 것도 후회했다. 바로 매장을 찾아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A씨는 “매장에서 항의했지만 파양 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결국 비용을 돌려 받지 못하고 고양이만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 충북에 사는 김모씨는 지난해 B업체로부터 파양된 강아지라고 해서 책임비 명목으로 25만원을 주고 데려왔다. 이틀 뒤 백신 접종을 위해 찾은 동물병원 의사로부터 강아지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김씨는 “업체에 연락했더니 업체가 지정한 병원에서만 수술을 해야 한다며 강아지를 병원에 데리고 오라고 했다”며 “하지만 병원이 어디인지는 알려줄 수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수술인데다 시일이 급한데 알지도 못하는 병원에 강아지를 맡길 수 없어 자비를 들여 강아지를 수술 시켰다. 그는 “심각한 질병이 있는 강아지를 건강하다고 분양한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며 “파양된 강아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보호자로부터 돈을 받고 반려동물을 맡은 뒤 새 보호자에게 연결해주는 이른바 ‘신종 펫숍’의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사, 결혼, 출산, 가족과의 불화 등을 이유로 기르던 동물을 돈을 주고 관련 서비스 업체에 소유권을 이전하는 이른바 ‘파양’하는 이들이 주요 고객이다. 반려인들 사이에선 ‘파양’이라는 용어는 동물보호법 상 처벌 대상인 기르던 동물을 버리는 ‘유기’와는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신종 펫숍 영업 업체는 최소 다섯 곳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사육 포기 동물을 돈을 받고 인수해 이를 되파는 영업 행위에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사육 포기 동물 나이, 질병에 따라 파양비 천차만별
신종 펫숍은 ‘안락사 없는 안심요양보호소’, ‘안락사 없는 유기동물보호소’등의 이름으로 반려동물을 파양하려는 이들을 모집한다. 동물을 포기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보통 30만원 안팎부터 시작하는데 동물의 나이, 질병유무 등에 따라 비용은 빠르게 올라 100만~300만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게 되는 데에는 ‘반려동물을 버린다, 포기한다’는 죄책감이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려견을 파양했던 C모씨는 “안 그래도 키우지 못하게 된 동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큰 상황에서 업체 측이 달라는 금액까지 깎을 수는 없었다”며 “돈을 주면 더 잘해주겠지 하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문제는 업체에 돈을 내고 동물 사육을 포기한 사람이 파양을 철회해도 비용을 돌려받지 못한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24시간 이내 혹은 1시간 안에 철회 의사를 밝혔지만 비용을 돌려주지 않은 사례가 확인됐다. 또 동물 사육을 포기한 사람이 새 가정으로 입양된 이후 해당 동물의 상태를 알고 싶어했지만 확인해주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B업체는 동물의 소유권을 포기했다가 포기의사를 철회한 사람에게 지급하지 않았던 비용을 다시 돌려주는 등 태도를 바꿨다. B업체 측은 또 사육 포기 동물의 경우 모두 건강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B업체 측은 “파양자가 건강검진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 파양자의 구두상 정보를 토대로 입양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파양자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고 입양 갈 때까지 해당 동물을 치료하고 있다”며 “비용을 받지 않은 경우에도 간단한 질병 등은 직접 관리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정 병원에서만 치료를 해야 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분양자가 임의 병원을 통한 치료를 진행할 경우 비용 청구를 할 수 없다”며 “해당 지역에 연계병원이 없어 서울과 경기권 지역 병원을 이용하도록 권했고, 연계 병원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보호소 명칭 사용·사육포기동물 재판매, 법적 사각지대
현재 동물보호법 상 ‘동물판매업’의 경우 동물을 ‘구입’해 판매, 알선 또는 중개하는 영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번식장 등으로부터 구입한 동물을 팔 경우에만 동물판매업으로 지자체에 등록해야 한다. 위 사례처럼 사육포기동물을 ‘돈을 받고’ 데려오는 경우에는 이를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해당 동물뿐 아니라 피해자들 역시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욱이 해당 업체들은 강아지를 구입해 판매하는 펫숍도 병행하고 있는데 ‘보호소’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보호소를 떠올리고 동물을 안심하고 맡기거나 구입을 하게 된다고 했다. 실제 한 포털 사이트에 ‘유기동물보호소’라고 키워드를 검색하면 해당 업체들이 가장 상단에 노출된다. 하지만 이 역시 법적 관리 대상이 아니다. 보호소는 법령상 명칭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는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선화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신종 펫숍업체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파양된 동물을 인수해 빠른 시일 안에 다른 보호자에게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동물을 인수하고, 입양 보내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현행법 상으로는 이를 관리,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게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대안으로는 해외 일부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육포기 동물인수제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박 활동가는 “다만 반려동물 등록, 생산판매 단계에서 이력 관리가 선행돼야 한다”며 “동물사육을 포기하는 기준이 명확하고, 정부차원에서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사각지대 인정, 법 테두리 안에 넣어야
정부도 해당 업종이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인정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신종펫숍 업종이 현재 법적 관리 대상은 아니다”라며 “지방자치단체 직영 또는 위탁보호소가 사육포기 동물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 보호소 명칭과 관련해선 올해 안에 보호소의 정의를 ‘비영리목적으로 유실,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자를 의미한다’라는 식으로 규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육포기 동물을 사설보호소가 인수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까지는 아직 검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재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업체들이 보호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보호소의 정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보호소가 아닌 곳은 보호소라는 명칭을 쓸 수 없다’라는 규정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이어 “동물판매업은 반려동물을 ‘구입’하여 판매, 알선 또는 중개하는 영업으로 규정되어 있다”며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구입하여’라는 부분을 삭제하면 기존 펫숍뿐 아니라 사육포기 동물을 매매하는 경우도 동물판매업을 적용, 법적 테두리 내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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