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지식인의 죽음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지식인’이라는 말을 듣기 힘들어졌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실제로 지식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 계급의 이익을 떠나 보편적 가치 위에서 민중을 위해 발언하던 지식인은 사라졌다. 물론 아직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더러 남아 있긴 하다. 이 혹독한 빙하기에 그들만 살아남은 데에는 독특한 비결이 있었다. 즉 이마에 ‘어용’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는 것이다. 오늘날 ‘어용’ 아닌 지식인은 거의 멸종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20세기 지식인의 전형을 만든 것은 에밀 졸라이리라. 1898년 그는 국가반역죄로 유죄를 선고 받은 어느 유태인 장교의 구명을 위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써서 발표한다.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며,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자들을 신랄히 고발한다. 광적인 반유태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졸라는 국가의 공적으로 몰렸고, 군사법원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년을 선고 받는다.
한편, 졸라의 뜻에 공감하여 마르셀 프루스트는 드레퓌스 재판의 재심을 청원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한다. 이 서명에는 아나톨 프랑스, 루이 파스퇴르, 에밀 뒤르켐, 클로드 모네 등 당대의 지성들이 참여했다. 이 사건은 지식인들이 하나의 ‘사회집단’으로서 정치적 개입을 시도한 최초의 역사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 시절 성명이나 서명을 통한 지식인들의 ‘앙가주망’도 그 원형은 바로 이 사건에 있다.
이 전통이 최근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작년 9월 소설가 황석영은 1,267명 문인들의 서명을 모아 ‘조국 지지’ 성명서를 주도한 바 있다. 조국을 졸지에 한국의 드레퓌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며칠 전엔 문서위조와 불법 투자,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어느 여교수의 구속 연장에 반대하는 탄원서가 발표되었다. 서명자 명단에서 조정래, 임옥상, 홍성담, 승효상 등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이름들을 본다.
이게 요즘 지식인들의 앙가주망이다. 우희종 교수는 민주당에 위성정당을 만들어 바쳤다. 그 당에서조차 도의적이지 않다고 하는 일, 거기 명분이 있을 리 없다. 시인 김정란과 역사학자 전우용은 대구시민을 향해 망언을 퍼부었다. 지역차별에 보편적 가치가 있을 리 없다. 이렇게 다들 ‘어용’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어용지식인’임을 자랑하는 이도 있다. ‘어용’이 투사의 가슴에 달린 자랑스런 훈장이 됐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지식인의 죽음
사회학에서는 지식인을 종종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부유층으로 분류하곤 한다. 대개 가진 집 출신이라 존재는 지배계급에 속하나, 학문과 예술은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향하기에 적어도 의식은 제 계급의 특수한 이익에서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적 부유층의 지위 덕에 존재 구속성을 초월해 사회의 전체 연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지식인들을, 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사회의 “파수꾼”(Wächter)이라 불렀다.
부유하는 계층으로서 지식인은 자기가 속한 지배층을 위해 일할 수도 있고, 계급을 배반하고 피지배층을 위해 일할 수도 있다. 지식인들은 대개 ‘테크노크라트’로서 지배체제에 복무하나, 그 일부는 앙가주망을 통해 제 지식을 기꺼이 민중을 위해 사용하려 한다. 정치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전자를 ‘기능적 지식인’, 후자를 ‘유기적 지식인’이라 불렀다. 흔히 말하는 ‘지식인’은 이중 후자, 즉 ‘유기적 지식인’을 말한다.
문제는 이 ‘유기적 지식인’이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데에 있다.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사조는 진리의 보편성과 객관성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렸다. 사회적ㆍ정치적 발언의 ‘준거’가 무너졌으니, 지식인의 역할 자체가 사라질 수밖에. 철학자 료타르는 이 상황을 ‘지식인의 무덤’이라 묘사했다. 오늘날 지식인이 아무리 객관성과 보편성을 주장해도, 그 발언은 간단히 어느 한 ‘편’의 것으로 매도 당하고 만다.
절대적 진리는 사라졌다. 이제 진리는 ‘발견’되는 게 아니라 ‘제작’된다. 이에 따라 사회에서 인문적 사유는 점차 공학적 사유에 밀려난다. 매체철학자 빌렘 플루서에 따르면 디지털기술은 과거의 역사적ㆍ진보적ㆍ계몽적 의식을 구조적ㆍ계산적ㆍ분석적 의식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런 시대에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발언을 해야 그저 잔소리나 늘어놓는 ‘씹선비’, 사회를 제작하는 데에 아무 쓸모도 없는 ‘입진보’로 여겨질 뿐이다.
◇그 많던 지식인은 어디에
세계를 해석하는 것을 넘어 세계를 제작해야 한다는 플루서의 요청은 언뜻 유토피아의 비전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날 세계를 제작하는 데에는 거대한 자본과 권력이 요구된다는 사실. 다시 말해 지식인이 세계의 제작에 참여하려면 시장이나 정치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상황은 결국 그나마 사회에 별로 남지 않은 유기적 지식인들마저 다시 기능적 지식인으로 되돌려 놓고 만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그 일이 일어났다. 시작은 김대중 정권 당시의 ‘신지식인’ 캠페인. 이른바 ‘지식기반경제’에서 지식은 상품이 되고 학문은 경제가 된다. 공학계열의 학자들은 그러잖아도 오래 전부터 자본과 손잡고 ‘산학협력’을 실천해 왔다. 국민의정부에 이르러 인문사회계열의 지식인들마저 세계를 만들겠다고 권력과 손을 잡기 시작한다. ‘비판’을 사명으로 알던 진보적 지식인들이 정부기관에 진출한 것도 그때부터다.
혁명을 외치던 386세대도 돌아보니 그새 용케 다들 교수가 되어 있다. 수도권 웬만한 대학의 교수연봉이 1억이 넘는단다. 한국에서 교수는 기능이 아니라 신분. 그 신분의 유지를 위해 그들은 자기들끼리도 안 읽는 논문을 써 가며, 그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줄 궁리를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누리는 특권은 희생양인 시간강사의 노동에 대한 착취를 통해 유지된다. 이 양들에 침묵하는 데에는 진보나 보수나 차이가 없다.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지배층이 되었다. 그들이 조국 일가의 일을 제 문제로 느낀 것은, 같은 상류층으로서 계급적 이해를 공유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는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제 계급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지식인’의 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그들은 그저 자기 계급을 대변할 뿐이다. 그새 획득한 권력을 가지고 그들은 이제 세계를, 즉 날조와 허위와 기만을 재료로 자기들만의 대안적 세계를 제작하고 있다.
◇헤게모니 전술
그들은 더 이상 ‘비판’하지 않는다. 비판해야 할 그 현실을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계, 언론계, 문화계 등 사회전반에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그 막강한 영향력으로 대중을 장악해 얼마 남지 않은 희미한 ‘비판’의 목소리마저 잠재우려 한다. 자기들이 만든 세계의 허구성이 폭로되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세계란 ‘언급’되고 ‘비판’될 것이 아니라 ‘제작’되고 무조건 ‘긍정’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전통적 지식인은 멸종했다. 제 계급의 구속성을 초월해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는 지식인은 더 이상 ‘계층’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익집단’으로서 진보는 승리했다. 하지만 ‘가치집단’으로서 진보는 죽었다. 이른바 ‘진보적’ 문인들이 전직 대통령보다 호화로운 변호인단을 거느린 강남 사모님의 석방을 위해 서명운동이나 벌이고 있자, 돈 없고 힘이 없어 죽어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은 정작 ‘보수’에 속한 어느 문인이 맡기로 한 모양이다.
자칭 ‘진보’가 권력의 비리를 덮으려 검찰 음모론이나 유포하며 한 패거리가 되어 검찰총장 제거할 궁리나 하고 있을 때, ‘우익’을 자처하는 소설가 김훈은 고독하게, 그러나 꿋꿋하게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들을 위해 글을 써왔다. 내가 아는 한 이것이 지식인의 올바른 ‘앙가주망’이다. 이 ‘최후의’ 지식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수치심을 느낀다. 저 징그러운 진보의 무덤에 이보다 더 고상하고 우아하게 침을 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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