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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슬기로운 동물생활

입력
2020.05.0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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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고기 먹자’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인생은 고기서 고기’,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명절에 고기를 선물하거나, 기운이 없는 친구에게 고기를 사주는 등 축하나 위로 자리에서 고기를 빠뜨릴 수 없다. 3월 3일을 삼겹살데이로 정할 정도로 한국인의 고기 사랑은 대단하다.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지만 막상 지역에 공장식 축사가 조성된다고 하면 환경오염, 동물 질병 등의 이유로 반대한다. 또한 몇 년 전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밀집 사육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동물을 다룬 잔혹한 역사에 대한 반성과 공장식 축산의 비참한 현실을 영국 가디언지에 기고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동물복지농장이 등장했다. 동물복지는 사육 과정에서 가축들이 느끼는 고통을 최대한 줄이는 데에 초점을 맞춘 사육 방식을 뜻한다. 쾌적한 환경에서 가축의 건강을 유지함으로써 안전한 축산물 생산을 가능하게 하자는 취지이다. 이 개념은 1964년 영국의 루스 해리슨이 ‘동물기계(animal machines)’에서 동물들도 고통과 스트레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리며 시작되었다. 현재 동물복지 선진국에서는 동물복지 규정을 준수한 축산물에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마크를 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2년부터 이러한 인증제를 도입하여 현재 250개 이상의 농장이 인증마크를 획득했다.

그중 경남 거창에 김문조 대표가 운영하는 ‘더불어 행복한 농장’이 있다. 행복한 가축이 행복한 소비자를 만든다는 뜻으로, 양돈 분야에서 최초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았다. 그는 2010년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시기에 돼지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야 좋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을 방문한 그는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는 동물복지 축산 농가들의 사육 기술과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자라는 돼지들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사람을 위한 동물복지가 아닌 동물을 위한 동물복지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그는 동물복지 사육방식을 결심했다. 사육공간을 확장해 돼지들에게 편안하고 청결한 환경을 제공하고 악취를 없애는 설비와 분뇨처리 시스템, 돼지 놀이터와 샤워장도 마련했다. 또한, 새끼 돼지의 꼬리와 송곳니도 자르지 않았다. 그는 동물복지의 길로 들어설 때 들었던 “조물주가 돼지를 완벽하게 만들었는데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사람이 잘못 사육하고 있다”라는 영국 수의사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과거의 생산 방식은 질(質)보다 양(量)이 우선이었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품질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현재는 축산물의 생산 과정까지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농가가 동물복지형 축산으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동물복지 농장은 일반 농장보다 넓은 축사와 설비 투자 등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드는 데 비해 수익성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물복지형 축산의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비자의 관심이 중요하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하면 동물복지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선진국에서는 일반 축산물보다 비싼 동물복지 축산물을 찾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동물복지 활성화는 소비자들이 시장을 만들어 준 덕분에 가능했다. 이렇듯 한국에서도 동물복지의 가치 그 자체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져야만 가축을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려는 농가가 늘어날 것이다. 다행히 동물복지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올해 ‘제2차 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농촌진흥청에는 동물복지연구팀도 신설되었다. 슬기로운 동물복지를 통해 동물과 사람, 환경이 더불어 행복해져 한국 축산업의 신뢰가 한 단계 높아지길 기대한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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