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부부처가 비공개 결정을 내린 내부 규정에 대해, 법제처장이 공개 여부를 다시 판단하도록 하는 방안이 입법예고되며 법령화 수순을 밟고 있다. 외부에 내부규정 내용을 숨기는 ‘깜깜이 관행’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일선 부처에서는 법제처가 부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법제처는 6일 이런 내용을 담은 법제업무 운영규정(대통령령)과 법제업무 운영규정 시행규칙(총리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비공개 훈령ㆍ예규 등도 발령 후 10일 이내에 법제정보시스템에 올리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법제처장이 이들 훈령ㆍ예규가 비공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이를 해당 기관장에 통보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문제가 된 비공개 내부규정 중에는 ‘검ㆍ언 유착’ 의혹으로 주목 받은 대검찰청 감찰본부 설치 및 운영규정 등이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검사 블랙리스트’라는 논란이 나온 법무부의 집중관리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지침(지난해 2월 폐지)도 비공개 내부규정이었다.
현행법은 훈령ㆍ예규 등을 발령할 때 법제정보시스템에 등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해당 규정이 △국가안전보장 등 중대 이익에 해를 끼치거나 △수사ㆍ공소유지 등 직무수행이나 재판 중인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감사ㆍ감독 등과 관련해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기관장이 비공개 사유를 법제처장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각 부처 기관장 판단 후 법제처장이 비공개 여부를 다시 검토하게 된다.
이런 개정안이 나온 것은 각 부처가 내부규정을 무차별 비공개 처리하는 관행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현행법은 법제처장이 요청할 경우 비공개 훈령ㆍ예규를 문서도 보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요청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비공개 내부규정이 많은 검찰이 도마에 오르곤 한다.
지난해 법제처 국정감사에서도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공개 행정규칙 중 국방부가 65건, 대검찰청이 57건, 법무부가 9건인데, 같은 수사기관인 경찰은 다 공개한다”라며 기관별로 자의적인 비공개 결정 탓에 법제처의 검토ㆍ심사권이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서 법제처가 정부부처의 내부 규정을 일괄적으로 검토하면 타부 자율성을 침해하는 등 과도한 권한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법제처가 지난해에도 비공개 행정규칙을 심사ㆍ검토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한 법제업무 운영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이런 반대 의견으로 무산됐다. 법무부는 당시 “타 부처 내부 판단기준에 과도한 개입을 하거나 업무 효율성에 배치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각 부처의 영역인 실무 규정에 법제처가 개입하는 것이 자칫 부처간의 불필요한 알력 다툼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부처 내부 규정들을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취지 자체는 올바른 방향”이라면서도 “(법제처가 최종 판단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법사위가 국회의 상원 노릇을 한다는 지적과 비슷한 반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타 법령과의 충돌을 조정하는 등 법제처 고유 영역을 넘어, 내부규정 공개여부를 판단하는 것까지 법제처 권한에 해당하는지는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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