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호수길 숲길… ‘전주의 쉼표’ 완주 BTS 로드
완주는 전주를 감싸고 있는 도농복합지역이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은 완주 봉동읍에, 전주 우석대학교도 삼례읍에 있다. 지리나 정서적으로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완주는 넓은 평야를 품고 있으면서도 자연 경관이 수려해 전주의 쉼표라 불린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2019 썸머 패키지 인 코리아’ 화보집을 촬영한 후 완주의 산골마을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소양면에서 위봉산성을 거쳐 동상면과 고산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BTS 팬들에게 ‘인생사진’ 성지나 다름없다.
본격적으로 완주의 비경으로 들어가기 전 BTS가 들른 곳은 삼례읍 ‘비비낙안’ 카페. 만경강 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 비비정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 만경강 너머로 전주 시내가 손에 잡힐 듯하고, 주변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전망이 시원하다. 특히 강 하류로 떨어지는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BTS 화보 촬영으로 가장 유명해진 곳은 소양면 오성한옥마을의 아원고택이다. 입장료 1만원이 다소 과하다고 생각되지만 고택 안으로 들어가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1층은 한옥을 떠받치는 기초이자 갤러리로 꾸며져 있다. 사각의 탄탄한 콘크리트 구조물이어서 현대적 감각이 돋보인다. 천장은 일부가 슬라이드식으로 열린다. 그 사이로 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환한 햇살이 쏟아진다. 갤러리의 작품을 능가하는 자연을 이용한 설치 작품이다.
갤러리를 빠져 나와 2층으로 올라가면 그제야 단아한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사 제쳐놓고 쉼을 얻는 곳’이라는 만휴당과 안채ㆍ사랑채ㆍ별채로 구성되는데, 안채와 사랑채는 진주의 250년 고택, 정읍의 150년 고택을 이축했다. 터를 잡고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아원(我院)은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전해갑 대표는 주저 없이 “아원고택의 주인은 주변 풍광”이라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정면으로 보이는 종남산이 으뜸이다. 고택의 모든 창은 이 산을 담는 액자다. 풍경을 차용한다는 한옥의 건축 철학을 철저히 구현했다. 연둣빛이 짙어 가는 5월의 종남산은 어느 창으로 봐도 황홀하게 눈이 부시다.
오성한옥마을 아래의 오성제저수지 역시 BTS가 ‘찍은’ 곳이다. 아담한 저수지에 초록 산 빛이 일렁거린다. 제방에 홀로 선 작은 소나무가 촬영 포인트다. 인근의 송광사는 순천 송광사 못지 않게 지역에서 자랑으로 여기는 사찰이다. 일주문ㆍ금강문ㆍ천왕문ㆍ대웅전이 일직선상에 놓여 평지 사찰의 특성이 도드라진다. 도로 바로 옆이어서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아원고택 뒤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차를 몰면 고갯마루에 위봉산성이 나온다. 1675년(숙종 원년) 전라감사 권재윤이 유사시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어진을 피란시키기 위한 용도로 축성했다. 실제 1894년 갑오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전주에 입성하자 태조의 어진과 시조의 위패를 성 안에 있는 위봉사 대웅전에 임시로 옮긴 적이 있다. 성벽 둘레가 무려 8,539m에 이르는 큰 규모지만, 걸을 수 있는 구간은 도로에서 보이는 게 전부다. 서문이 있었던 자리에 문루는 사라지고 초석만 고대 유물처럼 남아 있다. 이 역시 BTS 화보에 등장한다. 위봉사는 이곳에서 찻길로 약 1km 떨어져 있다.
위봉산성에서 고갯마루를 넘어 동상면으로 접어들면 골짜기는 더욱 깊어진다. 위봉사 아래쪽 도로변 우측으로 위봉폭포가 보인다. 3단으로 꺾여 떨어지는 모습이 제법 운치 있다. 도로에서 폭포 아래까지는 목재 계단 산책로로 연결돼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가 오고 난 후면 물소리가 웅장해 소리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득음 장소로 선택했다고 한다.
내리막이 거의 끝나는 지점부터 도로는 더욱 커브가 심하다. 대아저수지를 끼고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호남평야에 물을 댈 목적으로 일제강점기에 만든 저수지다. 산 빛과 물빛, 어느 한 자락 곱지 않은 곳이 없건만 야속하게도 차를 세울 곳이 없다. ‘드라이브 스루’로 눈에만 담는다. 저수지 인근의 대아수목원은 전주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이다. 시내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첩첩산중에 들어 앉은 것처럼 공기가 맑고 아늑하다.
저수지를 돌고 돌아 고산면 창포마을에 이르면 다시 BTS 화보 촬영지와 만난다. 만경강 최상류이자 대아저수지 바로 아래 마을이다. 평범한 풍경도 스타가 다녀가면 특별한 곳이 된다. 창포마을의 개울가 작은 다리가 화보 촬영지다. 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맑고 차다. 다리 앞 허름한 동네 슈퍼인 ‘용암상회’도 그들이 찍은 곳이다.
창포마을은 창포를 내세운 농촌체험마을이다. 창포 샴푸와 비누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숙박시설과 농가 맛집도 운영한다. 마을에서 가까운 ‘놀토피아’는 암벽타기를 비롯해 갖가지 실내 모험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즐기기 좋다.
완주=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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