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 이후 한국인의 ‘국가 자부심’ 변화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두고 세계 각국 언론이 연일 극찬하고 있다. 대규모 검사와 철저한 추적,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로 대변되는 한국식 대응법은 국제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특히 대규모 봉쇄 조치 없이 코로나19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선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예로 부러움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의 전망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코로나19는 기존 세계질서를 크게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성공적인 대응으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에 대한 세계적 호평이 우리의 국가 이미지를 크게 향상시켰을 것이라는 기대도 적잖다.
한국리서치 ‘여론속의 여론팀’이 총선 직전인 지난달 10일부터 1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보며 우리 국민들의 국가 자부심이 지난해와 비교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살펴봤다.
주요국 코로나19 대응엔 낙제점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지만 최근 소강 국면을 보이고 있는 중국,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전파됐지만 소규모 검사로 미적거리다가 상황이 나빠진 일본, 대규모 확산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전세계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대응을 각각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중국이 잘 대응하고 있다는 답변이 25%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대응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가 각각 13%로, 중국보다 더 낮았다. 일본의 경우, 4%만이 잘하고 있다고 응답해 96%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WHO의 경우에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우리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73%가 잘하고 있다고 응답해, 비교 자체가 무색할 정도였다. (그림2)
주요국의 코로나19 관련 발표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는지 물었다. 중국의 발표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은 4%, 일본의 발표를 믿는다는 응답은 7%에 그쳤다. 반면 미국의 발표에 대해선 53%가 신뢰한다고 답했다. 유럽 국가들의 발표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61%나 됐다. 국가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항목이 국가에 대한 호감도나 신뢰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국가 이미지는 여전히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코로나19 관련 정보의 신뢰도가 한자리 수치를 기록한 중국과 일본의 경우 국가 이미지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중국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변화했다는 응답이 90%(매우 부정적 47%)나 됐다. 일본은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이 95%(매우 부정적 60%)로, 더 높았다. 미국은 78%(매우 부정적 18%), 유럽 국가들은 75%(매우 부정적 16%)를 기록해 중일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결과를 보였다.
급격히 높아진 국가 자부심
우리 정부의 코로나19에 대한 세계 각국의 찬사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국민들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국뽕(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다수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응답이 80%로, 지난해 8월 조사결과(68%)보다 12%포인트나 상승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응답도 71%로, 지난해 조사결과(58%)보다 13%포인트 높아졌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도 76%로, 지난해 8월 일본 불매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조사 결과(58%)보다 무려 18%포인트나 상승했다. (그림4)
이러한 변화는 성별과 연령, 소득, 이념 등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일부 국민들에서만 나타나는 국뽕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평가에 코로나19 대응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은 73%나 됐다.
정치ㆍ외교적 역량엔 냉정한 평가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조사 항목이 전반적인 국가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는 기본 척도라고 한다면 각 부문별 국가 역량에 대한 평가는 국가 자부심의 근거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세부 척도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영역의 국제경쟁력, 정치 및 민주주의 수준, 매력적인 대중문화, 국민들의 시민의식,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 의료ㆍ과학ㆍ통신 분야 기술수준, 공산품의 품질 수준 등 7가지 부문별로 우리나라 국가 역량을 평가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상위수준이라는 응답은 ‘의료ㆍ과학ㆍ통신 분야 기술수준’이 81%로 가장 높았고, 공산품의 품질 수준(79%)과 매력적인 대중문화(67%)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정치 및 민주주의 수준(33%)과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36%) 등은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림5)
‘국민들의 시민의식’에 대해선 상위 수준이라는 응답이 51%, 하위수준이라는 응답이 37%로 나타났다.
이상적인 국가상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부합하는지 물어본 결과는 냉정한 판단을 보여줬다.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국가(74%) 정치적 의사결정이 민주적인 국가(62%) 범죄와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국가(60%)란 항목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정치ㆍ경제 분야의 부패, 빈부 격차,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자연환경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이 더 높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배려’‘다양성이 인정되는 국가’라는 항목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 의견이 50%로 동일했다.
지난해 조사결과와 비교할 때 ‘정치적 의사결정’과 ‘범죄나 전쟁으로부터의 안전’‘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배려’‘문화적 풍요로움’ 등의 평가가 크게 개선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정치ㆍ경제 분야의 부패’‘빈부 격차’ ‘일자리 문제’ 등은 지난해와 비슷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코로나19의 성공적 대응이 국가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자부심을 고취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국가 역량의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는 정부의 대응이 단순히 경제 회복이나 산업 경쟁력 강화에 국한돼선 안 되는 이유다. 정치 분야의 경쟁력, 빈부격차 해소,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 등 여전히 우리에겐 아픈 손가락인 분야까지 정부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 그 결과가 바로 진정한 선진국, 세계선도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란 점을 여론조사는 보여주고 있다.
박종선 한국리서치 여론2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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