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발간 기자회견 현장.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등 필진들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국민으로부터 상당한 동의와 지지를 받는다고 자부한다”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며 자신감도 내비쳤다. 지난해 내놓은 ‘반일종족주의’가 10만부 넘게 팔리는 등 화제를 모은 데 고무된 듯 보였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학계 반응은 ‘전략적 무시’다. 논박한답시고 괜히 입 대봤자 ‘노이즈 마케팅’에 놀아나는 꼴이라 본다. 하지만 최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만난 강성현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그냥 두기엔 일종의 “거대한 백래시(backlash)”이기에 “간과하면 할수록 이들의 세력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것”이라 크게 우려했다.
강 교수는 국내에서 손 꼽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전문가인이기도 하다.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제기도 불거진 정의기억연대 논란에 대해서도 “운영 방식의 잘못이 있다면 개선해야겠지만, 그걸 빌미로 정의연을 파렴치한 단체로 몰아가고 위안부 운동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영훈 사단의 역사부정이 노골적이다.
“식민지근대화론 연구자들의 일회성 도발이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반일종족주의’ 현상이란 한일 양국 우파가 합작한 ‘역사부정’과 ‘혐오’의 거대한 백래시다. 1997년 일본에서 출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모임’은 한국으로 건너와 2005년 뉴라이트의 ‘교과서포럼’으로,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문으로, 2015년 국정교과서 논란 등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종북을 문제 삼는 척 하다 이제 노골적으로 친일까지 가세시켰다. 이제껏 친일파로 공격을 받던 이들에게 ‘그럼 너는 반일종족주의자냐’라는 반격 논리를 만들어줬다.”
-실증적 근거, 팩트 싸움을 내세운다.
“탈 진실 시대, 대안적 사실을 만들려는 시도다. 역사부정론은 엄격한 실증주의를 내세운다. 그 실증주의란 대개 ‘희생자들 기억이 부정확하다’,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조작됐다’는 인상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라고 윽박지르거나, 증거를 못 대면 가짜라고 낙인 찍는다. 동시에 지식 생산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통계와 수치만 나열하며 ‘이게 기본 사실’이라 강변한다. 기존 연구, 다른 연구는 쳐다보지 않은 채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건 학문이 아니라 선동이다.”
-허약한 논리에도 사람들이 왜 열광할까.
“우리 사회의 양분화된 진영 갈등, 유튜브 등 뉴미디어의 영향이다. 우파에게,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이들에게 반일종족주의는 일종의 바이블이다. 자극적 콘텐츠는 유튜브에서 짭짤한 돈벌이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 사이에선 ‘제2의 이영훈’을 꿈꾸는 이들도 나타난다. 일본의 ‘넷우익’ 네티즌이 달라붙어 거대한 우파 네트워킹을 구축한 상태다.”
-학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나.
“괜히 반박해봤자 저들만 좋은 일 시킨다는 우려가 크다. 지난해 반일종족주의 논란 당시 역사학 단체들은 별도 토론회 같은 것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응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동시에 ‘친일파’라는 비판 또한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역사부정론자들이 거짓을 얘기하는 위치를 드러내주는 방식으로 논쟁을 해야 한다. 그들이 선별하고 왜곡한 문서의 생산 맥락을 고려해가며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학계가 노력해야 한다.”
-정의기억연대를 두고 피해자중심주의에 어긋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한 오해가 좀 있다. 피해자 뜻에 무조건 따르라는 게 아니다. 피해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주체로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 운동의 목표다.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은 ‘피해자’ 이용수로부터 ‘인권운동가’ 이용수로 가는 맥락에서, 그리고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숱한 말의 역사에서 맥락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악의적 의도, 혹은 반목 프레임으로 할머니의 발언을 선별, 왜곡하는 것은 피해자의 뜻에 반하는 일종의 증언 ‘착취’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운동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하나.
“더 큰 연대의 물결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위안부 운동이 국제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건 보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 정파의 운동으로 축소시키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아시아여성평화운동으로 더 발전시켜 국제적 연대 운동을 만들어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시작한다면 나중에 일본 시민사회도 참여시킬 수 있다. 아시아여성인권평화재단을 공익재단으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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