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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자유의 땅 미국, 그 모순과 역설

입력
2020.05.19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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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지난달 20일 주민들이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봉쇄 조치 반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지난달 20일 주민들이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봉쇄 조치 반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8년 전 방영되었던 뉴스룸이라는 TV쇼는 어느 대학 좌담회에서 한 대학생이 토론자들에게 왜 미국이 가장 위대한 나라인지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질문에 보수주의 논객은 자유, 또 자유, 그러니 자유를 지키자고 대답하고 청중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개인의 자유는 독립선언서, 헌법, 권리헌장 등 건국의 중요 문서 곳곳에 등장하는 미국의 가장 신성한 가치이고 미국인의 집단적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자유를 입에 달고 사는 이 나라에서 살다 보면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개인의 자유는 미국의 중요 법안이나 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중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돈의 영향력이라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정치자금에 대한 규제가 어려운 것은 정치자금 기부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일부이고 그 자유는 기업에도 적용된다는 연방 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모든 총기와 무기류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권리의 근거가 되는 헌법 제2 수정조항도 전제적인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아도 개인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미국의 역사와 문화는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다. 건국 이념으로 자유를 강조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은 많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고, 십만 명당 700여명의 시민을 감옥에 가두고 있는 21세기 미국은 세계 최고의 수감률이라는 명예롭지 않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고삐 풀린 자유시장은 부유한 소비자들에게 거의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주지만, 허약한 복지 시스템은 많은 국민들에게 실업, 빈곤, 질병의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 잭 니콜슨이 출연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는 영화에서 잘나가던 뉴욕의 젊은 예술가가 강도에게 당한 부상으로 인한 병원비 때문에 파산지경에 이르러 부모에게 돈을 빌리러 가는데, 20년도 더 된 이 영화는 지금도 많은 미국인들이 경험하는 현실이다. 총기 애호가들이 특공대원이나 쓸 법한 첨단무기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자유는 시민들이 도심의 밤거리를 맘 놓고 걷고 부모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자유를 대가로 요구한다.

마스크를 둘러싸고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도 이런 자유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인구의 80%가 마스크를 쓰면 전염률을 12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지만, 매일 1,000명 이상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많은 미국인들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다. 감염 경로를 추적해 감염 위험자를 격리하는 것도 사생활과 자유의 침해 때문에 체계적으로 시행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국의 성공 사례도 한국은 미국과 달리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주의 문화라는 편견 때문에 적용할 수 없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지금 미국과 한국 중 어느 나라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서 놀지 못하고 부모들은 집에 갇혀 재택근무와 홈스쿨링을 병행하고 일부 대학은 벌써 가을학기에도 온라인 수업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3,600만명이 직장을 잃어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고 다섯 명 중 한 명의 아이가 굶주리고 있다. 반면 친구들을 불러 아이 생일파티를 하고 맛집을 찾아 줄을 서고 연휴를 맞아 제주도에 놀러 가는 한국인의 일상을 보면 과연 어느 곳이 자유의 땅인지 혼란스럽다. 우리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한 개인의 절대적 자유란 환상에 불과하고 결국 어떤 자유, 누구의 자유인지에 대한 사회적 선택을 피해갈 수 없다. 코로나19의 시대, “자유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낭만적인 구호보다 사회적 연대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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