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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인공지능 시대를 향유하려면

입력
2020.05.19 18:00
수정
2020.05.19 18:0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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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으로 시작됐다. 증기기관을 세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와트. 그렇다면 와트의 이름쯤은 기억해 주는 게 인간으로서의 예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와트(W)를 단위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와트는 뭘까? “뭐긴 뭐야, 집에서 사용하는 전구는 대개 30~120와트잖아. 30와트 전구는 어둡고, 120와트 전구는 밝지”라는 대답이 쉽게 튀어 나온다. 이 대답만 보면 와트는 전구의 밝기 단위일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조심스러워진다. 요즘 전구들은 작은 와트 수로도 밝은 빛을 내기 때문이다. 간단히 검색해 보면 와트는 ‘일률’의 단위라고 나온다.

1와트는 1초에 1줄(J)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률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튼 와트는 밝기 또는 에너지의 양이 아니라 일률이고, 에너지의 단위는 줄이다. 열역학 제1법칙을 밝혀낸 제임스 줄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1줄은 1뉴턴(N)의 힘으로 1m를 움직이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의 양이다. “우씨! 뉴턴은 또 뭐야?”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이름을 딴 힘의 단위다. 한도 끝도 없다.

방향을 바꿔보자. 줄은 낯설어도 칼로리(cal)는 익숙하다. 칼로리 역시 에너지의 단위인데, 물질의 온도를 높이는 데 쓰는 열의 양으로 측정한다. 과자와 라면 봉지에도 적혀 있어서 우리는 매일 접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하루 평균 여성은 2,000칼로리, 남성은 2,500칼로리를 섭취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칼로리는 cal이 아니라 Cal로 쓴다. 대문자로 쓰는 Cal은 소문자로 쓰는 cal보다 1,000배나 큰 킬로칼로리(kcal)다. 그러니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여성은 하루에 2,000킬로칼로리, 남성은 2,500킬로칼로리가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줄을 쓰지만 그것은 물리학자의 일이고 우리는 익숙한 칼로리만 쓰면 될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많은 나라의 과자 봉지에는 칼로리가 아니라 줄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줄=0.24칼로리, 1칼로리=4.2줄’로 기억하고 있으면 간단히 어림잡을 수 있다.

지금은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의 대표선수는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알파고와 우리 이세돌의 실력은 굳이 다시 비교할 필요 없지만 에너지 효율은 한번 따져보자.

바둑을 둘 때 소모되는 에너지는 연구된 바가 없다. 하지만 체스 마스터가 체스를 하는 동안 소모되는 에너지 양은 조사되었다. 체스 마스터들이 체스 두는 동안 소모하는 에너지를 심장박동 추적을 통해 계산했다. 체스 마스터들은 한 시간 동안 280킬로칼로리를 소모했다. 엄청난 양이다. 프로 테니스 선수가 30분 동안 단식 경기를 할 때 소모하는 에너지와 같다. 바둑 기사는 대략 체스 마스터보다 2배 정도의 에너지를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제1국은 2016년 3월 9일 오후 1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30분에 끝났다. 3.5시간이 걸렸다. 어림잡아 체스 마스터가 6시간 경기하는 에너지만큼 쓰였다고 생각한다면 이세돌은 대략 1,680킬로칼로리를 소모했다. 조코비치가 단식 경기를 세 시간 치른 셈이다. 음, 그러고 보니 바둑 기사치고 살찐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프로바둑 기사들은 대부분 호리호리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도 몇 분 떠오르긴 한다.)

그렇다면 알파고는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했을까? 알파고는 1,202개의 중앙연산처리장치(CPU)와 176개의 영상처리장치(GPU)를 사용했다. 대략 5만 킬로와트시(kWh)를 사용했을 것이다. (12기가와트시를 썼다는 기사도 있다. 터무니없는 추산이다. 생각해 보시라. 웬만한 원자력 발전소 한 대로는 감당이 안 되는 양이다.)

이세돌이 사용한 1,680킬로칼로리(kcal)는 1.194킬로와트시(kWh)다. 알파고는 이세돌보다 에너지를 5만배나 더 사용한 셈이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물론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인공지능 하나가 인간 5만명만큼의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이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시작되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연료는 한계에 달하고 있으며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 가열과 기후 위기 문제는 이미 한계에 달해 있다. 따라서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공 여부는 인공지능의 발전만큼이나 새로운 에너지원, 깨끗한 에너지원을 찾는 데 달려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확진자는 줄지만 ‘확찐자’는 늘고 있다. 그렇다고 클럽에 갈 필요는 없다. 춤보다 바둑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악기를 배우면 에너지 소모는 급격히 늘어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인공지능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그게 지구를 지키는 길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향유하려면 일단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자.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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