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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사는 범법자?… ‘합법화’를 새기고 싶은 타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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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사는 범법자?… ‘합법화’를 새기고 싶은 타투

입력
2020.05.30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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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만명 새겼지만 비의료인 시술 불법, 美·英·佛선 허용

정부는 합법화 방침… 의사협회 등 반대에 법 개정 안 돼

타투이스트 백모씨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작업실에서 고객 발목에 문신을 새겨 넣고 있다. 백씨는 일회용 바늘이 꽂힌 기계에 잉크를 조금씩 묻혀가며 붓질하듯이 바다 그림을 그렸다. 이한호 기자
타투이스트 백모씨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작업실에서 고객 발목에 문신을 새겨 넣고 있다. 백씨는 일회용 바늘이 꽂힌 기계에 잉크를 조금씩 묻혀가며 붓질하듯이 바다 그림을 그렸다. 이한호 기자

“이것 좀 보세요. 이게 정말 의술로 보여요? 예술이지.”

16년째 문신 시술을 해왔다는 문신사 A씨는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작업장에서 자신의 팔에 새겨진 딸의 얼굴을 보여주며 물었다. 흑백 잉크로 그려진 눈과 코는 윤곽이 뚜렷했고 얼굴 모양은 누가 봐도 사람의 형체를 띠고 있었다. 지금은 훌쩍 커버렸지만 A씨 팔에 그려진 딸은 여전히 앳된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A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모습을 특별한 방식으로 간직하고 싶었다”며 문신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문신사 백모씨는 손님의 자해 흔적 위에 명화를 새긴 적이 있다. 자해 상흔이 고민이라며 찾아온 여성의 손목 부위에 그는 에곤 쉴레의 작품 ‘엄마와 딸’을 새겨줬다. 그의 문신 시술로 붉은 흉은 모녀가 힘껏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충동적으로 자해를 했었다는 여성은 “그림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문신은 이처럼 더 이상 조직폭력배의 상징이 아니다. 문신을 새긴 사람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사연이 다양한 만큼 경험자도 급증해 대한민국 문신 인구는 반영구 문신(일정 기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문신) 경험자 1,000만명에 영구 문신자 300만명을 포함해 1,300만명(반영구미용사 중앙회 2016년 추산)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의 몸에 문신을 새겨준 사람은 대부분 범법자일 가능성이 높다. 문신사 대부분이 비의료인인데, 이들의 문신 시술행위는 현행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신 인구가 늘고 있고, 문신에 대한 반감도 줄어드는 상황을 감안해 비의료인의 문신시술을 합법화하자는 논의가 불붙고 있다. 특히 정부의 양성화 방침에 의료계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비의료인 문신 시술 허용 문제는 21대 국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문신을 의료행위로 볼 것인지, 예술행위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까지 가세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규모 1조원… 법적ㆍ의료적 관리 부재

의료법 제27조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신을 바라보는 이 같은 법적 시각은 시대가 바뀌고 문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지금까지도 요지부동이다. 문신사들은 시술을 직업으로 택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법률로 정하지 않고 있어 기본권을 침해 받고 있다는 취지로 다섯 차례나 헌법소원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 또는 각하 처리했다. 헌재는 “고유한 의미의 문신 시술행위는 피시술자의 생명, 신체 또는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며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에서 문신사의 존재는 불법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문신사들은 지난해 9월 2일 여섯 번째 헌법소원을 청구한 데 이어, 내달 중 일곱 번째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7일 문신업소에서 만난 남성이 팔뚝에 새긴 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특별한 방식으로 딸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문신을 했다고 말했다. 강보인 인턴기자
지난 17일 문신업소에서 만난 남성이 팔뚝에 새긴 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특별한 방식으로 딸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문신을 했다고 말했다. 강보인 인턴기자

문신사들의 이 같은 합법화 시도는 타투(tattoo) 인구 급증에 따른 ‘문신의 대중화 현상’과 맞닿아 있다. 문신사들이 주축이 된 한국타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문신 시술 종사자는 22만명에 달한다. 시장규모는 1조2,000억원(반영구 화장시장 1조원, 영구문신 시장 2,000억원)이다. 하지만 문신 산업은 여전히 제도권 밖에 있다. 비의료인이 시술하는 행위는 공중보건을 저해한다는 우려로 불법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보건지침 있다지만, 의료계는 반대 입장

문신사들은 자체 지침이 마련돼 있어 보건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문신사중앙회는 보건학 박사의 감수를 받아 감염관리와 소독, 멸균과 관련한 보건지침을 준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임보란 중앙회 회장은 “법적 기반이 없어서 자체적으로 정기 위생교육을 실시한다. 일회용 바늘 사용과 소독ㆍ멸균기 설치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교동에서 문신업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우리나라에선 아주 작은 사고만 발생해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한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그러나 문신사들의 시술 합법화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직역 이기주의 차원이 아니라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문신사들이 위생지침을 마련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미용실에서 유사 의료행위를 시도하려고 했을 때도 위생교육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단순히 교육만 받았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적절한 의료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협회는 문신을 상업적 관점에서도 권장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문신 시술을 한 뒤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피부과 학회에선 청소년들이나 교정시설 수용자들이 문신 때문에 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경우에 대비해 무료로 문신을 지워주는 일까지 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쟁업체 신고하고 병원서도 법 위반

그러나 법적 규제와 의료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신 시술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범법자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특히 문신사들의 시술행위가 불법이란 점을 악용해 시술을 받은 뒤 협박해 돈을 뜯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않다. 문신사 박모씨는 “시술이 끝난 뒤 손님이 돈을 내지 않을까 봐 매번 불안하다”고 말했다. 문신사 문모씨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시술업체끼리 서로 신고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법이 부재하니 밥그릇 싸움이 심해지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처벌 규정이 여러 법령에 산재해 수사기관이 혼란을 겪고 있는 점도 문제다. 실제로 약사법 위반부터 의료법 위반에 공중위생관리법 위반까지 적용 법률이 다양하다. 익명 신고로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반영구 문신사 김모씨는 “경찰에선 공중위생관리법 위반으로 수사했지만, 검찰이 죄명을 바꿔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찾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문신업소 작업장 내부 모습. 고객 몸에 그릴 여러 모양의 도안이 벽에 걸려 있다. 고객 요구와 취향을 반영해 문신사가 최종 결정한다. 강보인 인턴기자
지난 16일 찾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문신업소 작업장 내부 모습. 고객 몸에 그릴 여러 모양의 도안이 벽에 걸려 있다. 고객 요구와 취향을 반영해 문신사가 최종 결정한다. 강보인 인턴기자

더구나 문신업소가 아니라 병원에서 문신 시술이 이뤄져도 불법 행위가 되기 십상이라, 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에서도 미용 목적 시술이 증가하고 있지만, 의료인이 직접 시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반영구 문신 시술 병원이 밀집된 서울 압구정동의 한 의료기관을 방문해 눈썹 문신 상담을 받았더니, 의사는 시술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표원장 직함이 적힌 상담사에게 ‘의사가 직접 시술하느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의사가 한다고 시술을 더 잘하는 건 아니다. 뷰티 라이너(반영구 문신사)들이 훨씬 예쁘게 해준다”고 답했다. 압구정 일대의 유명 반영구 시술 병원 두 곳을 더 찾아 상담을 받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뷰티 전문가’ ‘메디 라이너’ 등으로 불리는 전문 시술자들이 있었을 뿐, 의료인이 직접 시술하는 곳은 없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문신 시술을 하더라도 시술자가 의료인이 아니라면 엄연히 불법이다. 전문 보건지식과 기술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 자격증을 주는 문신사 제도가 있다면 의료법을 위반하는 일이 없겠지만, 현재로선 전국적으로 불법 행위가 만연하고 있는 셈이다. 의사협회 측은 “시술자가 의사이든 보조인력이든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자격증이 없다면 불법”이라고 강조했지만, 정작 의사들 묵인 하에 병원에서 행해지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실태에 대해선 파악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주요 국가는 면허ㆍ허가ㆍ신고제 운영

외국에선 우리나라와 달리 문신 시술이 의료인만의 영역이 아니라 상업적ㆍ예술적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는 비의료인에 의한 문신 시술을 예술행위로 보고 문신사 면허ㆍ허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은 일부 주(州)에서 위생과 감염 교육을 이수한 문신사에게 시술 면허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영국에선 지역별로 등록된 시술자가 위생ㆍ안전ㆍ기술 관련 교육을 1년 이상 이수하면 문신사 자격을 준다. 프랑스도 21시간의 위생ㆍ보건 교육을 마친 후 지역 보건청에 신고하면 문신업소를 운영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비의료인의 시술행위가 불법이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사카 고등법원은 2018년 의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문신사의 시술 행위와 관련해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비의료인 문신 시술 합법화 시도, '비의료인 문신' 주요 국가 합법화 여부. 그래픽=송정근 기자
비의료인 문신 시술 합법화 시도, '비의료인 문신' 주요 국가 합법화 여부. 그래픽=송정근 기자

국내에서도 문신을 예술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에 조금씩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정치인들도 시술을 받았다고 당당히 말할 정도로 문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 문신사 정모씨는 “세계 타투이스트(문신 시술자) 사이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에 한국인이 한두 명 정도는 있을 정도로 한국 타투는 국제적 위상과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며 “문신사 대부분이 미술이나 미용 전공자가 많기 때문에, 문신이 의료행위인지 예술행위인지에 대한 물음이 왜 한국에서만 나오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그러나 세계적 추세와 합법화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국가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합법화했다고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캐나다는 대마초가 합법이고, 네덜란드는 마약과 매춘이 합법이다. 대마초의 세계적 추세가 합법화라고 해서 우리가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 문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비의료인 문신 시술을 허용하는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부작용이 클 것이란 주장이다.

◇법제화 시도 무산ㆍ정부는 양성화 방침

세계적 추세를 감안한 듯 국회에서도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합법화하기 위한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다. 김춘진 전 의원과 박주민 의원은 문신사 시술행위 합법화를 골자로 한 ‘문신사 법안’을 발의했지만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법안에는 문신사 면허와 업무범위, 문신업자의 위생관리 의무와 문신업소의 신고와 폐업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문신업을 양성화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지난해 11월에는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용사 면허를 받은 사람이 업무범위 내에서 행한 반영구 화장 행위에 대해선 의료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공중위생관리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최근 정부 방침은 문신사들에게는 고무적이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중소기업ㆍ소상공인 규제 혁신방안’의 일환으로 눈썹ㆍ아이라인 등 반영구 화장의 비의료인 시술 허용방침을 발표했다. 12월엔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개선 방안으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자격 신설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법 개정 없는 문신사 시술은 여전히 불법이라, 입법 작업이 병행돼야 합법화의 길이 열린다.

박주민 의원실은 “소신을 갖고 법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문신사법이 워낙 예민해 항의전화가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문신업계와 의료계의 건설적 논의 없이는 법제화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강보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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