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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스스로와 저절로

입력
2020.05.20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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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 시인은 거울 속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라 했다. 이처럼 아주 닮은 것 같아도 실상은 같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반대인 것이 있다. 말도 그러하다.

우연히 만난 사람은 우연찮게 만난 사람과 같을까? ‘우연히’란 일이 뜻하지 아니하게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고, ‘우연찮게’는 꼭 우연한 것은 아니나 뜻하지도 아니한 상황이다. ‘그 사람 잘못하면 길거리에 나앉겠다’에서 ‘잘못하면’을 ‘잘하면’으로 바꾸어 쓰면 나중에 민망해진다. ‘때마침 비가 멎었다’처럼 일이 제때에 알맞게 이루어졌을 때는 ‘때마침’을 쓰지만, 뜻하지 않았던 사건과 우연히 마주친 상황이라면 때마침보다 ‘공교롭게도’가 더 어울린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공교로운 경우에다가 아무 말이나 하다가는 인간관계에 낭패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비슷한 정도가 아닌데 엉뚱하게 쓰는 말도 있다. 드라마에서 임신부를 두고 ‘홀몸도 아닌데...’라 한다. 그런데 홀아비, 홀어미처럼 홀몸은 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사람이다. ‘홀’은 ‘짝’의 상대어다. 아이를 밴 몸이라면 ‘홑몸도 아닌데’가 맞다. ‘홑’은 홑옷, 홑이불과 같이 ‘겹’과 쌍을 이룬다. 심지어 ‘스텐그릇’은 쓰는 사람의 생각과 완전히 다른 말이다. 쉽게 녹슬지 않는 그릇, 스테인리스(stainless steel) 그릇을 들고 녹슨 그릇이라 부르니, 말 못하는 스테인리스 그릇이 속 터질 일이다.

‘스스로’와 ‘저절로’를 구별 못 하는 외국인은 ‘선생님, 문이 스스로 닫혔어요’라고 말한다. 이해는 되지만, 이상한 어느 부분에 살짝 예민해지지 않은지? 말이 제 뜻을 표현하는지, 느낌까지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는 쓰는 사람이 스스로 살필 일이다. 말에 대한 민감성은 저절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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