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파제’와 ‘중력파’. 생소하다.
설파제는 감염 질환에 쓰이는 합성 살균제 약물군의 통칭이다. 공통 포함되는 원자 집합 ‘술파닐아미드’가 명칭의 유래다. 세균 감염에 속수무책 당하던 인류가 얻은 첫 항생제가 설파제다. 항생제는 인체에 심한 피해를 입히지 않고 인체 내 특정 세균들을 골라 죽일 수 있는 성분을 가리킨다. 화학요법 회의론이 대세로 굳어 가던 1930년대 중반 무렵 독일과 프랑스에서 잇달아 발명됐고, ‘기적 중 기적’으로 칭송됐다.
중력파의 정의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 운동을 할 때 생기는 중력 변화가 일으키는 시공간 잔물결’이라 한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1916년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부터 유도한 파동방정식을 통해 존재를 예측했지만 워낙 미약한 파동이어서 100년간 실재가 확인되지는 못했었다.
과학 얘기는 이렇게 낯설다. 마치 외계어를 듣는 듯한 위화감이다. 하지만 어쩌랴. 과학은 사회 속에 우리와 함께 있다. 발명ㆍ발견의 현장이 그 사실을 드러낸다.
신체와 우주의 비밀을 풀어 가는 역사적 사건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 낸 ‘웰메이드 과학 서사시’ 두 편이 번역돼 나왔다.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극미(極微) 세계와, 망원경으로도 모자라 상상에 의존해야만 도달 가능한 초거대 세계를 미시사(微視史)적으로 접근했다. 다큐멘터리지만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원저(2006년 출간) 제목이 ‘현미경 속 악마’(The Demon Under the Microscope)인 ‘감염의 전장에서’에는 여러 전장(戰場)이 등장한다. 일단 감염이 일어나는 사람의 몸 안이다. 논픽션의 주인공인 1939년 노벨생리학상 수상자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인체가 미생물에 맞서 싸우고 감염을 없애려 노력하는 과정에 매혹됐다”. “이 현미경적 수준에서 펼쳐지는 감염의 드라마에서는 세균 병사들이 출연해 전투 중에 전우를 죽였다.”
도마크도 몸 밖에서 이 세균들과 싸웠다. “역사상 최초의 효과적인 항균 화학물질”을 발명하는 건 그의 원대한 꿈이었다. 승리의 순간은 이렇게 묘사된다. “Kl-695는 도마크가, 아니 그 누가 지금까지 본 어떤 화학물질과도 다르게 작용했다. (…) 주사기로 투여해도 생쥐를 보호하고 경구 투여해도 보호하고 어떤 용량을 투여해도 보호했다. (…) 생쥐들을 들여다보는 건 전투가 끝난 격전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세균은 완패했다.”
이 독일인 과학자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한다. 1장 시작이 이렇다. “도마크는 피가 자신의 군복 상의를 적시고 있는 광경을 바라봤다. 때는 1914년,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있었다. 독일군은 탄막 사격(폭탄ㆍ탄알을 한꺼번에 퍼붓는 사격)을 막 끝낸 참이었다.” 도마크가 숙적을 만난 건 독일군 10만~20만명이 상처 감염으로 숨진 1차 세계대전에서다. “그는 상처 자체는 전쟁의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이은 감염은 틀림없이 과학으로 예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악마인 세균에 초점을 맞췄다.”
의학 패러다임 간의 각축도 등장한다. 영국인 세균학자 암로스 라이트 경은 독일인들이 틀렸다고 확신했다. 그는 “건강을 찾는 확실한 길은 면역계뿐이며 화학물질로는 결코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의술은 자연이 병을 치유하는 동안 환자를 달래는 일”(볼테르)이라는 게 당시 인식이었다.
책은 도마크의 행적만 따라가지는 않는다. 독일과 영국, 미국, 프랑스 등 각국 거대 제약 회사의 경쟁 같은 시대적 맥락 설명이 생생한 실험실 현장 묘사를 둘러싼다. 세상을 바꾸는 하나의 약이 발명되고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건과 맥락이 입체적으로 교차한다. 코로나19 백신을 기다리는 요즘은, 저 시대의 재연일 수 있다.
책장이 휙휙 넘어가는 20세기 초반 설파제 서사시에 비해 중력파가 처음 검출되고 그 실재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과정을 그린 ‘중력의 키스’는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다. 더 촘촘한 기록이다. 중력파로 확증된 ‘그 신호’ ‘GW150914’가 검출된 2015년 9월 14일부터 2016년 2월 논문이 발표되기까지 라이고(LIGO) 협력단 내ㆍ외부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과학자들이 주고받은 1만7,000통의 이메일과 원격 회의 기록을 바탕으로 빈틈없이 기술된다. ‘과학 지식’이 관측되고 선언되며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현장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2017년 동명(Gravity’s Kiss) 원저를 옮겼다. 그 해 노벨물리학상은 라이고 프로젝트 핵심 기여자에게 돌아갔다.
두 책이 보여 주려는 지점은 연역적으로 도출된 가설이 현실에서 귀납적으로 증명될 거라는 신념, 그리고 과학이야말로 이론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론이라는, 어쩌면 종교에 가까운 믿음이 있다는 아이러니다.
둘 다 근사한 이야기다.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설파제 서사시”(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라거나 “한 편의 숨가쁜 스릴러”(‘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쓴 소설가 김초엽)라는 찬탄을 들었다. 두 저자가 ‘반쯤은 과학자’인 스토리텔러여서일 것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감염의 전장에서
토머스 헤이거 지음ㆍ노승영 옮김
동아시아 발행ㆍ472쪽ㆍ2만2,000원
중력의 키스
해리 콜린스 지음ㆍ전대호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568쪽ㆍ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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