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김태양ㆍ박초희씨 인터뷰… “악법 지적, 동의 못 해”
“피해자는 죽고 없어… 민식이법, 운전자 편하게 하려는 법 아니다”
“반대편 공격 시달려도 ‘스쿨존 사망 어린이 0명’ 된다면 후회 없어”
지난해 9월 11일 충남 아산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소식에 전국은 슬픔과 분노로 들끓었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동생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아이(당시 8세)가 지나가던 차량에 들이받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신호등이 없는 곳이었지만, 가해 운전자는 ‘일시정지 후 출발’ 의무를 어기고 그대로 직진했다. 차량은 피해 어린이를 밟고 지나가기까지 했다. 소년은 두부손상과 과다출혈로 그 자리에서 숨졌다(동생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이른바 ‘민식이법’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故) 김민식군의 얘기다.
‘신호등이라도 있었다면 민식이가 죽진 않았을 텐데….’ 부모의 머릿속에선 이런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 과태료 액수는 일반 도로에 비해 2배인데, 교통사고는 장소가 어디든 똑같이 취급되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지키려면 스쿨존에선 어른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조심해서 운전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민식군 부모는 사람이 모이는 곳엔 스쿨존 관련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기 위해 어디든지 향했다. 지난해 10월 1일엔 국민청원 글도 올렸다.
아산을 지역구로 둔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명수 미래통합당 의원도 적극 나섰다. 두 의원이 낸 관련 법안은 일부 수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스쿨존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한 개정 도로교통법, 스쿨존 내 어린이 상해 또는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도록 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민식이’의 이름을 달고 빛을 보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민식군의 부모 김태양(35)ㆍ박초희(33)씨는 대중 앞에 서길 꺼리지 않았다. 얼굴이 알려진다는 부담도 있었으나,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고통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법안 통과 이후엔 외부 노출을 자제했다. 그러는 사이, 민식이법 과잉처벌 논란의 화살이 그들을 향하면서 오해도 점점 쌓여 갔다. 도를 넘은 공격은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 지난 12일 충남 아산 자택에서 어렵게 만난 김씨와 박씨는 너무 어린 나이에 곁을 떠난 아들의 이름을 딴 법과 직면한 현실에 대해 조심스레 입을 떼기 시작했다.
-민식이법 통과 이후 한동안 언론 인터뷰를 고사했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김태양(이하 김)=지난해 말부터 (민식이가 당한) 사고와 법에 대한 여러 오해들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억울한 부분도 있었지만, 굳이 인터뷰를 하기보다는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아직 남아 있는 가해 운전자 재판을 통해서 밝혀질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대신 경찰청,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기관들과 ‘스쿨존이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해질 수 있을까’를 논의했다. 보행자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운전자의 시야 가림 현상을 어떻게 해소할지 등도 함께 고민했다. 예컨대 ‘반사경 같은 시설물이 횡단보도에 있으면 시야 확보가 더 잘 될 것 같다’고 건의하는 식이다.
-민식이 사고 이후 가해 차량의 과속 문제를 거론했는데, 나중에 ‘시속 23㎞로 추정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솔직히 그런 결과가 나왔을 땐 믿기 어려웠다. 처음 과속 문제를 언급하게 된 근거도 가해 차량 운전자의 발언이었다. 사고 현장에 모인 사람들 중에 저희 부친이 있었다. 아버지가 해당 운전자에게 ‘얼마나 빨리 달렸길래 아이가 저렇게 됐느냐’고 따지니, 가해자가 “당시 40㎞ 정도로 달렸다”고 말했다. 어차피 나중에 밝혀질 부분인데,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 과속 언급으로 불편함을 느낀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 사과를 드렸으나 비난이 계속됐다.
박초희(이하 박)=가해자가 경찰서에서 속도와 관련한 진술을 번복한 걸 뒤늦게 알았다. 일찍 알았다면 과속 여부 파악을 위해 다른 블랙박스 영상을 추가 확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경찰이 확보한 영상은 충돌 시점에서 가해 차량이 멈출 때까지의 짧은 영상이다. 차량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달려왔는지를 볼 수 있는 영상이 있었다면 보다 정확한 속도 측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가해 차량은 제한속도를 지켰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는데.
김=보행자가 건너고 있으면 차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서야 한다. 원래 있는 법(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인데도 안 지킨다. 가해 차량은 횡단보도 앞에서 서지 않았고, 아이들을 치고도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민식이를 역과(歷過ㆍ밟고 지나감)한 후에야 브레이크를 밟았다. 과속이 아니었어도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아이가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평생 장애를 안더라도 살 수는 있지 않았을까.
(가해 운전자에 대해 검찰은 금고 5년을 구형했고, 1심 법원은 ‘금고 2년’을 선고했다. 지난달 27일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2단독 최재원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주의해서 전방을 주시하고, 제동장치를 빨리 조작했다면 피해자 사망이라는 결과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점에 비춰 피고인의 과실 정도는 중한 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고로 인해 나이 어린 피해자가 소중한 생명을 잃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한 점, 부모가 심대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에 대한 엄벌 탄원, 함께 사고를 당한 동생의 정신적 충격에 따른 후유증이 염려되는 점 등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제시했다.)
-민식이법 중에서 가중처벌과 관련된 특가법에 대한 오해가 많다.
김=공포를 조장하는 유튜버를 보면 실제 사례가 아니라, 법 해석을 갖고 “민식이법은 악법”이라고 말한다. 감경 요소를 하나도 염두에 두지 않고 법 조문만을 두고 ‘사망사고 시 무조건 징역’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고 본다.
박=민식이법은 기존에 처벌하지 않던 걸 처벌하는 게 아니다. 아주 극단적인,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민식이법으로 억울한 운전자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 불안을 조성해서 이득을 보는 집단이 누구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잉처벌 논란은 어떻게 보나.
김=처벌 수위가 약해서 법을 우습게 아는 이들도 있다. 처벌이 과하다고 말하기에 앞서, 기존의 법을 그 동안 정말 잘 지켰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사망사고일 때 벌금형이 없는 점을 지적하는 분들이 계신데, 민식이법은 가해자를 위한 법이 아니다. 운전자 편하게 하려고 만든 법도 아니다. 피해자는 죽고 없다. 스쿨존에서만큼은 어른들이 좀더 조심하자는 취지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
(실제로 지난 3월 과잉처벌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민식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 35만4,857명이 참여했고, 행정안전부는 지난 20일 답변을 내놨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사건마다 구체적으로 판단해 억울한 운전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취지였다. ‘스쿨존에선 제한속도 기준을 지켜도 사고가 나면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선 “다소 과한 우려”라고 선을 그었다.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날 “현행법에 어린이안전의무 위반을 규정하고 있고, 기존 판례에서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거나 사고 발생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인 경우엔 과실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잉처벌 논란과 함께, 그 화살이 입법 활동을 한 유족을 향하기도 했다. 후회한 적도 있나.
김=그렇다. 이렇게 한다고 우리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무슨 득을 볼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박=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2018년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아이 3명이 사망했다. 민식이법으로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게 되고, 사망자가 0명이 되면 의미 있는 일 아닐까. 사실 이렇게 했는데도 사고가 나는 일이 두렵긴 하다. 법이 생겼는데도 스쿨존에서 아이들이 숨지는 일이 생기면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박씨가 우려하던 ‘그 일’은 인터뷰 이후인 21일 실제로 일어났다. 이날 전주 덕진구 반월동의 스쿨존에서 불법 유턴을 하던 SUV 차량이 엄마와 함께 있던 2세 유아를 들이받았고, 아이는 숨졌다. 민식이법 시행 이후 첫 사망사고였다.)
◇“과잉처벌… 개정해야” vs “유지해야”
민식이법은 지난 3월 25일 시행에 들어갔다. 스쿨존에서 운전자가 차량 제한속도를 위반하거나, 이를 지키더라도 전방 주시 등 어린이 안전에 유의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아 13세 미만 어린이를 다치거나 숨지게 한 경우엔 가중처벌을 받게 됐다. 사망사고일 때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상해일 땐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각각 처해진다.
민식이법의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에선 ‘스쿨존에서 제한속도를 지키며 주의를 기울여 주행했는데도, 피할 수 없는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물론 운전자 과실이 없으면 처벌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보행자 대 차량’의 사고에선 운전자 과실이 0%인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억울한 운전자가 나올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얘기다. 형사사건 전문 최린아 에이원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특히 사망사고엔 벌금형이 없어 공무원의 경우, 직업을 잃게 될 위험이 있는데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운전자가 중과실을 범한 경우가 아니면 선처를 구할 수 있도록, 벌금형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법 조항과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예컨대 현재로선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와 법정 형이 동일한데, ‘과실로 교통사고를 낸 사람’을 그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현승진 세웅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민식이법은 과실에 따른 범죄를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고 있다”며 “처벌의 형평성이 어긋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교통사고 전문변호사인 정경일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는 “윤창호법은 운전자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핵심이며, 민식이법은 피해자 보호, 곧 어린이의 생명에 초점을 맞춰서 가중처벌하는 것”이라며 “양자는 달리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망사고 시 벌금형을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어린이의 생명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가해자가 직업을 잃을 가능성을 언급하는 건 옳지 않다”고 못 박았다. 그는 “벌금형 도입 없이도 과실이 경미한 경우엔 검찰이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기소유예를 하거나, 민식이법이 아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으로 기소할 수 있다”면서 과도한 공포심 조장 움직임을 경계했다.
아울러, ‘운전자 과실 0%란 힘들다’는 지적에 대한 반박도 있다.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서성민 변호사는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엔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국가교통안전ㆍ방재연구센터 센터장도 “운전자가 10~20% 정도는 실수를 하면서 다녀도 된다는 것이냐”며 “스쿨존에선 운전자 스스로 두려움을 느낄 만큼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2018년 6월 대전지법은 스쿨존 구역을 지나가다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던 11세 아이를 쳐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제한속도를 준수해 서행하고 있었고,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피해자가 도로로 나오기 전까지 확인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갑자기 자전거를 탄 채로 횡단해 올 것이라고 예견하긴 힘들었을 것”이라며 “사고발생 즉시 제동장치를 작동해 정차했던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엔 수원지법 성남지원이 스쿨존 내 반대편 차로에서 무단횡단을 하던 8세 아이를 들이받아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운전자가 제한속도를 지킨 가운데, 반대편 차로에 정차해 있던 차량들로 인해 운전자가 피해 아동을 발견하기 어려웠고, 피해자를 발견한 즉시 차량을 제동했더라도 해당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보행자 중심 문화 구축 계기 삼아야
전문가들은 “과잉처벌 논란을 떠나, 먼저 보행자 중심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보행자 사망자 수는 3.3명(2017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0명)의 3배가 넘는다.
차량 중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실험을 진행한 결과, 보행자가 횡단하려 할 때 운전자가 양보한 경우는 10번 중 1번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새로나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처 과장은 “차량 기술 발전으로 운전자는 더 보호받게 된 반면, 보호장구 없는 보행자는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라며 “교통안전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보행자 중심 문화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돌발행동을 하곤 하는 발달 특성을 감안해 스쿨존 내에서의 운전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서영 한경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주변을 두루 살피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놀다가 공이 굴러가면 공만 보고 쫓아가는 식”이라며 “아이들의 발달 특성을 이해하면 교육만으론 해결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성민 변호사도 “스쿨존을 단순히 ‘학교가 있다’는 표시쯤으로 안이하게 생각한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며 “차량을 ‘달리는 흉기’로 인식하고, 이 구역에선 운전자가 굉장히 조심해서 지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산=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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